-
-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지식사회에 접어 들다 보니 평생학습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어떠한 분야이든 모두 적용되는 바이다.비단 조직의 말단에 있든 개인사업을 하든 학창시절 배웠던 전공을 살려 계속 학습과 연구를 해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대개는 전공과 무관한 업무의 심화,자기계발 등을 쉼없이 연마해 나가야 한다.이것이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기에 삶이 녹록치 않다.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도전과 열정의 자세로 꾸준하게 가려는 길을 닦아 나가려는 인내와 의지도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떠한 분야에 미치지 않고서는 주체적이고 전문가적 인간으로서,또는 사회의 리더자로 타인에게 끌려 가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영역을 확립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대부분 마음 속으로는 몇 년만 도(道)를 닦는다는 심정으로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마음 속으로 계획을 세우지만 빡빡하고 여유없는 시간과 공간적,물리적 제한으로 말미암아 도로아미타불(徒勞阿彌陀佛)이 되고 만다.그대로 몇 년 만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 미쳐 보면 어떨가 한다.설마 죽기야 하겠는가.오히려 지성은 함양되고 문제해결력은 향상되며 세상과의 소통은 더욱 원활해져 가지 않겠는가.사실 시간이 없다,여건이 안된다 등 별의별 변명이 난무하지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시간은 짬을 내는 것이고 여건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삶의 경험이고 체득이다.
나는 음악을 애매하게만 좋아하는 편이다.뚜렷하게 음악의 어느 분야에 미쳐 CD.LP 등을 사 나르는 별종과 같은 행위는 하지를 못했다.국민학교 3학년 시절 외갓집에 자주 놀러 갔는데 (외조모께서 아들을 낳지 못해 이모부를 데릴사위로 들여 옴) 이종사촌형이 1960,70년대 가요 레코드를 틈만 나면 사오는 것이었다.천식이 심했던 외조모께서는 토방에서 10미터를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호흡곤란을 겪고 있었기에,심심할 때 들으시라고 트로트풍의 레코드를 사 날랐던 것이다.트로트는 언제 들어도 감성적이고 애수 섞인 곡들이 많아 몇 번만 들으면 금방 입에서 가사가 나올 정도였다.나이가 들면서 현대가곡은 귀에 잘 들어오지를 않고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1970년대 들었던 흘러간 가요가 정착되어 현란하게 빠른 템포나 재즈와 같은 가사는 쉽게 흡수가 되지를 않는다.다만 가곡은 무척 좋아하는 편이어 드라이브할 때 자주 듣는다.
시인.문화평론가인 김갑수 작가와 함께 한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는 작가 자신이 음악에 완전 미쳐 음악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음악의 애호가요,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글의 내용도 작가의 음악경험과 에피소드 그리고 풍부한 음악역사의 식견을 두루두루 혼입시켜 글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내가 이 글을 읽고자 한 이유는 모짜르트,베토벤,슈베르트,슈만,바흐 등과 같은 고전음악에 대한 정보를 다소나마 얻으려는 차원에서 신청했는데,김갑수 작가의 편안한 친구가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어조와 묵직하고 고뇌섞인 삶의 해탈감마저 느끼게 해 주어 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다만 작가는 음악에 미쳐 골방에 틀어 박히고 몇 날 며칠을 LP판을 틀어 놓기를 되풀이하는 것이 일상인듯 (작가가 밝혔듯)꾀죄죄한 입성에 치렁치렁한 봉두난발의 모습을 연상하니 마치 도를 닦는 거사와 같은 인상을 안겨 주었다.
누구나 고전음악을 비롯하여 현대음악의 다양한 장르 이를테면 재즈,발라드,힙합,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음악장르가 있을 것이다.내 경우에는 피아노,첼로,교향곡 등을 우선으로 틈을 내여 감상에 젖어 들고 싶다.변화가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과 삶의 권태기일수록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온갖 걱정과 시름,뒤숭숭함 등을 클래식세계와 함께라면 저절로 내려져 가면서 마음은 한결 평온해지리라 생각을 한다.작가는 음악 전문가이다보니 작곡가,연주가들까지 탈탈 털어 독자들에게 소개를 하고 있다.음악을 좋아하고 판을 사 나르는 행위가 계속 이어지다 보면 음악도 중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우려를 해 본다.
원시시대 인간이 야생의 숲에서 사냥하던 본능이 쇼핑 행위로 고스란히 이전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이런 음반 탐욕은 음악을 사냥하는 행위다. -P82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11월 낙엽이 지는 계절이 찾아 온다.남성의 계절이라고 하듯 쓸쓸하고 고독감을 느끼곤 한다.또한 지금까지 만나고 소통하고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우연찮게 만나기를 시도하기도 한다.내 나이 중년이 되다 보니 고독은 씹을수록 암칡 맛과 같이 달작지근하기만 하다.일부러 만나야 하고 만나지 아니하면 모임에서 퇴출 당하는 극무시당하는 구속된 관계는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언제 아무 때나 찾아가도 반가워해 줄 사람이 두,세 명으로 족하다.애정이 구속되는 것은 고독보다 더 끔찍한 악몽이라고 하듯 나도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사랑은 기억되는 것이니까.김갑수 작가의 허무주의에 가까운 음악의 인생 이야기는 음악에 미친 사람들끼리 길고 넓은 공간에 모여 음반을 들으며 음악에 미친 사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해도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편안하고 재치있고 대중성에 부합하는 기억에 남을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