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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산이 있었다 - 한국 등산 교육의 산증인 이용대 교장의 산과 인생 이야기
이용대 지음 / 해냄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산은 늘 내 곁에 있었다.태어나 자라던 시골집은 전형적으로 낮으막한 산들고 둘러싸여 사계에 따라 산 빛깔은 색상을 달리하면서 시복을 안겨 주기도 했다.비오는 날 초가집 마루에 앉아 처마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비에 젖은 앞산은 더욱 진녹색으로 변하여 갔다.앞산은 소나무 숲이었기에 그 푸른빛을 유지하고 겨울 날 눈에 쌓인 하얀 모습은 심산유곡에 갇힌 외딴집과 같은 정경을 연출하기도 했다.산을 보고 자란 나는 머나 먼 객지에 나와 살고 있을지언정 눈을 감으면늘 떠오르고 반겨 주던 고향의 산은 뛰놀기도 하고 나무를 하러 가기도 하고 산채를 뜯기도 했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산은 무심하면서도 사람을 부르는 묘한 마력이 있다.어린 아이가 뒤뚱거리며 벽을 잡고 걸음마를 배우기도 하고,더 성장하게 되면 나무에도 오르고 담벽도 오르기도 한다.나아가 또래들과 어울려 산을 타면서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한다.고2 때 나를 포함하여 절친 셋이서 내장산을 탔던 적이 있다.뱀모양과 같이 꼬불꼬불한 산비탈 잡목과 풀죽은 어린 대나무 가지들을 헤치며 산정상에 올라 산아래를 내려다 보니,힘겹게 오르던 온몸은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우리 셋은 싸가지고 온 도시락과 음료로 배를 채우고 다시 하산하여 내장사의 전경을 관람하고 흐믓한 기분으로 귀가를 했다.
건강과 힐링이 강조되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건강 삼아 취미로 산을 오르기도 하고, 산악회 동호인에 가입하여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어떠한 방식으로든 산을 오르는 행위는 번민과 갈등을 일소하고 내일의 활력소를 찾기도 하기에 산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면 삶의 현장에서도 늘 긍정적이고 상호 협조적인 마인드를 갖었다고 생각한다.산이 좋아 산과 함께 한 드라마틱한 산사람의 산증인 이용대 작가와 함께 이 글을 따라 가 보았다.

산을 오르는 행위에 대한 시각과 관념은 동.서양이 다른 차이,견해를 보이고 있다.동양은 문화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산에 오르는 행위를 '할 일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으로 폄하하고,서양은 어린 시절부터 산에 오르는 것을 삶의 멋진 도전으로 인식하고 적극 권장하고 있다.그래서인지 동양권에서는 등산의 역사가 서양보다는 짧기만 하다.서양은 1787년 몽블란 알피니를 초등에 성공한 뒤 전문 등반인을 알피니스트로 명명하고,그후로 극지 탐험 및 고준봉(에베레스트,메킨리 등)을 탐험하는 전문 산악인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한국도 20세기 초반부터 등반이 이루어지게 되는데,1970년대 후반부터 전문 등반인이 탄생했다.수많은 등반인의 애환을 발견하게 되는데 등로(登路)주의에 몰입했던 몇 몇 분들이 등반 중에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그들은 알피니즘 정신에 충실하고 자신의 체력 한계를 시험해 보고자 하는 열망과 탐험의 정신이 가슴 깊숙이 배여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용대 작가는 오랜 세월 산사람으로 등반과 후학들에게 펼쳤던 등반 교육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에피소드 및 알피니즘의 정신을 들려 주고 있다.그간 미처 몰랐는데 등반을 포상심리,명예에 목숨을 건 등반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심마저 생기게 했다.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동일하지 않기에 일면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등반인을 후원하는 스폰서 및 홍보기관의 부추김과 상업성에 등반 정신을 망각해 버리고,순수하게 산을 좋아하고 탐험을 즐기는 산악인에게 재를 뿌리는 흠짓을 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알피니즘의 화신인 머메리가 남긴 명구 '바이 페어 민즈(by fair means : 정당한 수단)와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올라라!"라는 등반 철학은 산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려는 이들에겐 이보다 더 소중한 교훈이 없으리라.

이 글 속에는 고(故)이은상 시조.시인이 한국산악회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발생했던 비보와 낭보,현재 한국 청소년들의 야생 정신의 결여의 원인,한국지리의 인문학 소양을 심어 주었던 이중환의 택리지,한국 100명산 김장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산을 오르는 기본 정신과 전문 등반인,오지를 탐험했던 탐험가 등의 에피소드가 도전과 모험 정신이 나약한 청소년들에게 일침이 되고 있다.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부하지만 "산이 있으니 산을 오른다"이다.산을 오르는데 있어 어느 길로 가야 빨리 오르느냐 보다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산을 오르는 것만이 성취와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삶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길을 선택하여 개척하는 자세로 매진하는 것이 좋은 결과,멋진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