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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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회파 소설의 거장 시마다 소지

 

시마다 소지 작가의 <고글 쓴 남자,안개 속의 살인>을 읽고 난 뒤 시마다 소지 작가의 문체는 촘촘하고 예리하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했다.필설로 표현하면 꼼꼼하고 치밀하며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일본인다운 글의 전개력에 경탄과 찬사를 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시마다 작가의 안개 속과 같은 미스터리는 사건.사고를 앞에 내세우고 이를 증명해 가는 과정이 매우 논리적이고 치밀하기만 하다.논설문으로 말한다면 두괄식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선한 모습과 내면의 자기본위의 이기적이고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에 공감이 충분히 가고도 남는다.

 

 기발한 발상,하늘을 움직이다(원제 奇想 天を動かす)는 초반부터 심상치가 않았다.쇼와 32년(1957년) 홋카이도 이시카리누마타선에 승차한 전철내에서 빨간 옷을 입은 피에로 남자가 전철내 화장실에서 죽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묘한 장면은 다음에 이어질 스토리의 전개에 커다란 암시작용을 했던 것이다.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말이 어눌하고 자기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남자 노파가 일본 우에노 역 근처 건어물 가게의 주인이 소비세(일본에서는 물건을 사면 물건값의 3%의 소비세를 내는데 이것은 노인복지에 쓰여진다고 함)를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홧김에 주인 여자를 칼로 살해하는 사건부터 시작된다.남자 노파는 성도 이름도 모르고 거주지 불명,무직인 상태이고 천애고아의 신분으로 고철 수거업,쓰레기 수거업 등으로 근근이 연명을 해 나가고 있다.

 

 소비세를 받아 내려다 칼부림 당해 살해된 여자는 가해자인 남자 노파를 종전(終前) 오타루 서커스단에서 만나 곡예와 춤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던 사이였다.피살된 건어물 가게 여자는 젊은시절 윤락업소 아가씨로서 오이란도츄(花蘭道中)에 참가했던 이력도 있다.기이한 사연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무슨 악연으로 늙으막에 좋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전락했던 것일까.기이한 삶의 이력의 소유자인 남자 노파는 칼바람이 몰아치던 1957년 홋카이도 혼센과 이시카리누마타선 사이를 신출귀몰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당시의 사건의 전말이 신기하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작품을 쓰기도 하여 실로 기이하고 평범치 않은 인생을 살아 왔다.

 

 살인사건 수사를 맡은 요시키 형사 남자 노파의 과거 전력과 삶을 샅샅이 캐기 시작한다.무직,주거불명인 노파의 과거의 탐문하면서 하나 둘씩 전력이 드러나게 되면서 요시키 형사는 남자 노파의 본향 및 성격,자질 등이 밝혀지게 되면서 남자 노파에 대한 과거 삶의 이력이 밝혀지면서,요시키 형사는 사람을 집중추궁하여 감옥에 집어 넣으려 하기 보다는 점점 더 남자 노파의 기구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사에 대해 연민의식에 빠지게 된다.나 역시 남자 노파가 유아 영리 유괴사건에 연루되어 26년 간 옥살이를 했다고 하지만,오랜세월 감옥 안에서 그가 남긴 두 권(삐에로의 수수께끼,하얀 거인)의 책자는 프로 작가는 아닐지라도 글 속에 담긴 내용과 홋카이도 이시카리누마타선 전철안에서 발생했던 피에로의 죽음과 시신이 증발되었던 잠깐 사이의 황당했던 내용이 거의 일치됨으로써 남자 노파,건어물 주인 여자,건어물 여자를 끼고 챙겼던 배후세력,남자 노파의 남동생 등의 관계의 알리바이가 정확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요시키 형사 미야기 교도소 및 종전 오타루 서커스단의 내막과 사연을 청취하면서 남자 노파의 신상이 베일에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노파의 성은 나메카와로 밝혀지고 미야기 교도서 생활을 함께 했던 동료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유아 영리 유괴사건은 무리한 질서 유지 및 치안 유지의 결과로서 무직,주소불명인 힘없는 남자 노파를 강제연행하여 누명을 씌우고 장기복역케 했던 것을 요시키 형사는 착잡한 심정으로 남자 노파를 바라보게 된다.경찰은 나메카와를 강제연행하여 적당한 곳에서 매듭을 지으려 했던 잘못된 수사관행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지금도 몰지각하고 안일한 관행에 젖어 있는 경찰들의 수사방식이 잔존하고 있으니,종전에는 얼마나 그 잘못된 수사관행이 심했을지는 불문가지이다.적당한 비교인지는 모르지만 1980년대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에서도 풍기문란죄를 내세워(정권 유지 차원) 수많은 인사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말도 못할 고초를 당했던가.권력은 합목적성을 띠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 백번 옳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1957년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삿쇼 선과 하코다테 본선은 현재는 없어진 노선도 있지만 사건일지와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니 하얀 거인이라는 것이 매우 놀랍기만 하다.나메가와 남동생이 자살한 것을 교묘한 장치를 활용하여 전철내 화장실 천장으로 끌어 당겨 거적대기 모습으로 전철 지붕에 누워 있는 모습을 한 기자가 놀랍게도 흑백사진으로 포착하였다.요시키 형사는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나메가와에게 추궁한 끝에 자신이 저질렀다고 범행일체를 자백한다.삐에로 복장을 자신이 아닌 남동생에게 입혀 교묘한 연출을 했던 나메가와,그는 1957년 당시 열차 탈선 사고에 대해 자초지종을 순서에 따라 설명하자 조금씩 반응을 보이게 된다.이로써 샷소선과 하코다테 본선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의 내막은 나메가와의 기발한 발상과 실행력이 막을 내리게 된다.

 

 

오이란도츄의 분장과 행렬 모습

 

 나메가와는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당했던 한국인 여태영,여태명이다.그들은 종전과 더불어 난부식 권총을 소지하여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로 안착한다.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서커스단에 가입하여 광대역을 하면서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다.그곳에서 오이란도츄로 분장했던 사쿠라이 요시코를 알게 된다.여태영의 남동생과 사쿠라이 요시코는 서로 좋아하게 되지만 그녀의 배후세력인 벤야마에게 포섭되어 남동생은 사쿠라이와 인연을 길게 잇지를 못하고 자살을 하게 되는 불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그리고 나메가와인 여태영은 유아 영리 유괴사건에 연루되어 26년 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뒤 사쿠라이 여인이 살고 있는 곳을 알게 되면서 마음 속으로 원한을 갚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소비세 12엔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인간의 소견이 좁은 것이다.여태영의 심산은 서커스단에서 남동생과 이루어지지 못한 결합을 오래도록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청년들이 사할린으로 강제연행되기 직전의 신검과 집체교육

 

  한국 땅에서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조선인 12만 5천명 정도로 추산되는데,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하려던 일본제국에 의해 살육된 27명의 영령이 아직도 사할린 땅에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국력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강제연행자는 2년 계약으로 탄광,부두하역업 등으로 강제연행되었지만 일본의 교활하고 약삭빠른 계획에 의해 거의 지켜지지를 않았다.참으로 불행한 역사이다.두 번 다시 이러한 역사의 아픔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력을 키워야 한다.여태영은 한국인으로서 이국땅에서 받은 수모와 설움은 일본 정부의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했다.비록 여태영 한 인간을 시마다 작가는 그리고 있지만 아직도 사할린 및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1,2,3세들이 겪는 인권침해와 차별대우는 한국정부가 책임지고 그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야 할 때이다.한 인간의 운명이 이토록 처참하게 파편화되고 부모형제없이 고아로 살아가는 교포들을 생각하면 인간의 운명은 시대의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것일까,아니면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경계선상에서 나는 내 후반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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