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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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정신적 내면 세계는 유교문화의 본류가 깊게 배여 있다.즉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주자학이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유교문화를 깊게 숭배하는 민족은 정도의 차이는 나겠지만 한국이 최고일 것이다.그중에 예의와 충효정신은 현대 한국인의 내면에 남아 있는 것이다.시대와 의식은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반드시 유교문화가 시대착오적이고 변화와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과거 한국 역사를 되새김질 하고 내면을 깊게 성찰해 가는데 있어 지난 시절의 유적,문화 등을 고찰하는 것은 개인이든 사회든 그 의미와 가치는 자못 크지 않을 수가 없다.

 

 중국 위나라 태수를 지낸 서예가 위탄(韋誕)은 뛰어난 글솜씨로 광록대부(光綠大夫)에 오르고 한자 10체에도 뛰어났다.그는 그중에 제서題書(서적의 머리나 비석 등에 쓴 글).서서(署書)라는 현판(懸板) 글씨에 두각을 나타냈다.한국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현판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삼국사기>,<삼국유사>,<동문선> 등 문헌에 편액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편액에 대한 기록이 조선시대에는 사찰,도성의 문루,궁궐의 전각,지방 관아와 향교,서원,주택 등에까지 걸렸다.편액에 쓰이는 한자는 액체(額體)라고 하며,굵은 필획으로 뚜렷하고 분명한 점이 특색이며 원칙이다.짜임새가 긴밀,방정하면서 장건한 글씨여야 했기에 주로 해서(楷書)가 대부분이다.훌륭한 현판 글씨는 공력과 실력이 요구되기에 아무나 쓸 수 없었기에 각 건축물에 남아 있는 현판 글씨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것이다.참고로 한국의 편액 중 가장 오래 된 글씨는 신라의 김생(711-791)이 쓴 것으로 공주 마곡사의 대웅보전이 남아 있다.

 

 건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현판의 글씨는 역대 왕을 비롯해 당대 대표적 지식인 및 명필 등이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으로 시대의 정신,가치관,예술의 정수가 잘 배여 있어,한국 문화 예술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가 없다.그런데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옛 현판들이현판에 대한 인지.식견 부족에 의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건축물의 현관문이라 할 수 있는 현판을 통해 현판에 담기니 사연,건물과 현판을 쓴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 역사의 속살을 체현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과 철학,풍류의 향기를 느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영남일보>의 편집위원으로 재직 중인 김봉규 저자는 정자와 누각,서원과 강당,사찰에 걸린 현단의 다양함과 다채로움을 사진과 해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면서 현판의 소중함과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국가가 환난을 만났을 때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임금이 아끼는 신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려져 있고,출항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도성의 제1관문을 수문장의 상징으로 나타내기도 한 현판의 글씨를 보면 볼 수록 그 의미와 가치는 매우 소중하기만 하다.산기슭,언덕받이,심산유곡,배산임수격인 풍수지리의 명당에 터를 잡아 위치한 현판들은 고색창연하다 못해 애잔하기 이를데 없다.수많은 외침과 불국토를 꿈꾼 당대의 위정자들의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시인 안도현의 시 <화엄사,내 사랑>에 나오는 구절은 무정한 세월과 고색이 짙어만 가는 화엄사를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전.중략) 산은 슬쩍,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 주었습니다./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잘 늙은 절 한 채//...//화암사,내 사랑/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지는 않으렵니다." -P186

 

 내 본가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관심이 살아난다.화암사의 크기는 시골 여느집의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는 화암사는 홀로 깊은 산 속을 지키며 불국토의 이상을 고고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누각이 입구인 것이다.그래서 맛들어지게 시인 안도현은 화암사를 가리켜 '잘 늙은 절 한 채'이고 화암사 가는 길을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고 화암사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생기지 않았나 싶다.화암사 편액의 특징은 하앙식(下昻式)으로 한 판재에 한 자씩 새겨 세 개로 나눠 따로 걸었다.이것은 한국 유일의 하앙식 건물이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산과 평지에 산재해 있는 편액들의 사연과 역사성을 살펴 보노라니 불현듯 처져 있고 중심이 없던 내 마음이 무소유의 상태로 바뀌며 바람결에 그네타기 하는 풍경 소리만 멀게마나 들려 오는 듯 하다.길을 가다 마음이 동(動)하게 되면 사찰과 서원,정자를 찾아가 보련다.현판을 만나게 되면 지난 시절의 임금,사대부,명필도 조우할 것이라는 마음의 물결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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