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종유석 아래로 똑똑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암흑의 갱도에 갇혀 있다면 인간의 정신적 세계는 어떻게 될까.만일 그러한 상태에 처해져 있다면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존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 돌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을 것이다.그런데 누군가의 음모와 조작에 의해 갱도에 갇히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형벌용 기구로 죄여져 있다면 그것은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다.몇 년 전 칠레 탄광이 무너지면서 광부 33인이 깊은 갱도에 갇혀 남은 식량과 물로 연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들은 삶의 끈을 놓치지 않고 동료 광부들과 아귀다툼도 벌이지 않으면서 바깥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의지를 보여 주었기에 결국 기사회생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스릴 넘치지만 어두운 세계를 들여다 보는 듯한 한 편의 프랑스 소설을 접했다.특히 주인공의 성장과정이 밝지 않았다면 인생의 길이 평탄하지 않는 것은 과학적,심리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반증되고 있다.주인공 조나탕의 성장과정은 반항기 사춘기와 맞물려 사회적 우등생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아버지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관념과 행동이 조나탕을 사행길로 빠지게 했다고 본다.반양성애,반유색인종의 관념이 짙었던 아버지로 인해 그는 가출,감화원을 오락가락하면서 육체적 고통과 반항이 그의 내면에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탈리에작가의 스릴 넘치지만 주인공의 어두운 내면세계를 잘 그리고 있는 현기증은 말 그대로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주인공 조나탕을 따라가 본다.작가의 출생지가 프랑스 안시인데 글의 공간적 배경도 안시가 나오면서 작가는 홈그라운드 및 인간의 내면세계를 충분히 소화하고 글에 반영하고 있는 점이 특장점이 아닐 수가 없다.
아내 프랑스와즈와 딸 클레르를 둔 조나탕이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지하 갱도에 갇혀 있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그의 몸은 족쇄로 채워져 있고,옆에 또 한 명도 족쇄로 채워져 있으며 또 한명은 철가면으로 채워져 있다.또한 조나탕의 애완견 포카라는 삶의 동반자마냥 졸졸 따라다니며 조나탕의 마음을 읽어주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한다.음습하고 공포 분위기가 서린 지하 갱도에는 조나탕,미셀,파리드,포카라가 좁고 어두우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헤쳐 나간다.그들은 남남인 관계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의 삶의 이력을 주고 받기도 한다.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당연 속을 채워야 하는 법인데,그들에겐 이렇다 할 식량과 음식이 없다.텐트와 가스버너,가스통이 전부일 뿐이다.주인공 조나탕은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아내 프랑스와즈와 무남독녀인 딸 클레르를 마음 속으로 만나기를 고대한다.
글은 조나탕이 읽었던 소설의 일부,인터뷰한 내용,명구,개인적 기록 등을 먼저 소개하면서 이야기의 전개방향을 암시해 주고 있다.속칭 수컷 3명이 지하 갱도에 갇혀 무엇을 어떻게 할까.단순하게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의 경험과 체험 등의 에피소드가 주가 된다.그러는 가운데 조나탕의 동반견인 포카라를 죽여 배를 채우게 되면서 스토리는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조나탕의 어린 시적 친구였던 막스의 얘기를 꺼내게 되는데,조나탕은 막스의 애인이었던 프랑스와즈와 가까워지게 되고 지하갱도에 갇히기 직전 막스는 빙하 절벽에서 추락사하게 된다.막스는 조나탕이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가려는 것을 감지했으며,지하 갱도에 쳐넣은 장본인은 막스의 음모에 의해 저질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와 딸을 만나기를 고대하던 조나탕은 빙하에서 기진맥진한 아랍계 청년 파리드를 잃고 미셸과 단 둘이 남게 되는데,조나탕은 미셸에 의해 기절 및 마취상태가 되어 길바닥에서 조난을 당하게 되고 행인들의 신고를 통해 병실에 눕게 된다.조나탕을 치료하던 의사는 조나탕의 삶의 이력을 캐물으면서 조나탕의 가정환경,성장과정이 베일에서 세상 밖으로 표출하게 된다.인간의 삶은 가정환경,성장환경,사회학습 등이 제대로 되어야 비로소 전인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프랑크 틸리에작가의 어둡지만 인간의 심리세계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