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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이펙트 -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냉철하고 뜨거운 분석 ㅣ 10 그레이트 이펙트 9
프랜시스 윈 지음, 김민웅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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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본과 노동이라는 주제를 놓고 얘기를 하자면 당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마르크스는 자본론 생전 제1권만 손수 출간을 하고 유고작은 후대인들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자본론이 출간될 당시 각계의 반응은 엇갈렸다.전대미문의 탁월한 저작이라 상찬할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천재적인 재능을 갖은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비롯하여 자본주의까지 저술했는데 의외로 그의 삶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역사와 문학에 심취했던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 사상의 영향을 받고 출판 편집장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 친부의 친구이고 정부 관료였던 베스트팔렌으로부터 시와 음악 등 수준높은 교양지식을 사사받게 되고,멘토의 딸인 에니아 결혼을 했다.결혼 무렵 언론인으로서 <라인 신문>을 경영하는 편집장이었는데 그의 논조는 매우 호전성을 띤 돌직구성 문체가 강하여 프로이센,러시아 등으로부터 힐난을 받기도 했다.나아가 청년 헤겔파에 대해서까지 비판의 날을 세우다보니 마르크스는 프로이센에 더 이상 거주할 상황이 아니었다.그래서 <독일-프랑스 연감> 공동 편집자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지음과도 같은 엥겔스를 만나게 된다.마르크스는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리는데,엥겔스는 가타부타 하지 않고 친구인 마르크스를 음양으로 지원하고 보호해 준다.
현대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보다는 자본의 힘이 지배적이고 우세하다는 것을 체감한다.자본을 쥔 기업가는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 잉여가치가 누적되어 간다.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갑과 을로 규정지을 정도로 자본을 가진 브루주아 계급은 그들의 영역과 발전을 위해 프로레타리아 계급을 지배,착취하기를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자본과 노동 사이에는 상생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를 않고 치열한 투쟁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임금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치열한 투쟁에 의해 결정된다.자본가가 결국 승리한다.자본가는 노동자가 없어도 더 오래 살 수 있지만,노동자는 자본가 없이 그렇게 오래 살아갈 수 없다."
P33∼P34
마르크스는 지식의 부유함을 가지고 있었고,엥겔스는 부유함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둘의 글쓰기는 대조가 되는데,글을 느리고 고통스럽게 쓰는 마르크스와 깔끔하고 사무적이며 우아한 문체를 자랑했던 엥겔스는 상호보완적인 입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자본론 1권 첫머리에서 마르크스는 "어떻게 시작하는가는 모든 과학적 작업에서 언제나 어렵다."로 서문을 대신한다.그만큼 자본론이 탄생하기까지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섭렵한 후 각고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반증이다.자본론에서 인상적인 문구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이 부의 기초적인 형식이라는 말로 비유하고 있다.나아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근거는 6시간 일하여 임금을 받으려면 추가적으로 5∼6시간을 더 노동해야 하는 부분이 현재 한국기업내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자본과 노동의 착취라고 본다.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기업이 잉여가치 20%의 증가를 했더라도 노동자에게 임금 20% 인상을 해줄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그것이 노사간의 갈등과 투쟁의 씨앗이 되어 춘투,쟁의,분쟁 등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자본과 노동의 문제가 식민시대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제국주의는 식민지의 노동자를 더 심하게 착취하고 노예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자본시장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간 힘의 역학에 따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안에는 노동가치 이론,이윤결정 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관련한 텍스트가 무수하게 담겨져 있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각자의 학문세계와 입장을 피력하고 논의를 하는데,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몇 년 전에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읽은 적이 있는데 꽤 난독증을 겪었다.경제학 용어,문장등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또한 문장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이어지다 끊겨지다 하다보니 강유원역자도 번역작업상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이 부유한 계급의 수를 상대적으로 또는 실제로는 절대적으로 축소시키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이다.이들의 숫자는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증가한다.사회주의의 전망은 사회적 부의 감소가 아니라 증가에 달려 있다. P157
상기 문장이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것 같다.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 무렵 사회주의의 전망을 통찰했던 것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갖은 기업가가 설령 도산을 해도 3대는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노동자의 앞날은 자본가의 힘과 권력에 의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여 발생한 잉여자본은 노동자가 먹고 살만한 수준을 보상하는 것이 아닌 일과 삶의 질을 균형있게 높이도록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이는 노사간에 신뢰의 문제가 걸려 있기에 자본가는 투명성과 자제력,노동자는 기업의 현실성을 고려하여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여 서로가 상생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야 할 때이다.그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론의 효율이고 효과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