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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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 놓고 살았던 적이 얼마나 될까.봉건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오고 주입식 교육환경,국가의 주류 이데올로기(독재시대) 속에서 생각과 감정의 표현은 미약하기만 했다.이것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던 세대들이라면(586세대) 생각과 감정의 폭이 매우 협소하고 단편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가정에서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부모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형제자매들에게 전수가 되고,학교생활도 마찬가지이다.사지선다형 객관식으로 학생의 그릇을 평가했으니 당연 생각과 감정을 맘껏 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게다가 남자들의 경우 군대생활,(경직된)조직 문화가 낳은 명령,복종의 관계로 이어졌으니 풍부한 지식과 교양,생각과 감정의 자유스러운 표현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했을 것인가.그렇다고 환경 탓만을 하려고 하지는 않겠다.

 

 오랜 시간과 세월 속에서 남자는 권력과 정복욕의 문화를 접하면서 용기와 담대함을 조장(助長)하다 보니 기질과 성향이 유약한 남자도 이러한 문화에 적응해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래서일까,남자가 생각과 감정,감성을 세세하고 자상하게 말하려 하면 경박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하고 폄하하고 만다.요즘에는 남.녀가 평등하게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생각과 감정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남자가 가장으로서 오로지 밖에서 일만 하다 집에 오면 아내가 챙겨 주는 밥상에서 잠깐 나누는 단답형 대화가 소통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가부장제의 생각과 감정의 DNA가 아직도 남아 있는 남성의 경우에는(나도 약간 그런 편이다) 가족구성원간의 생각과 감정의 교류가 매우 단편적이고 협소할 것이다.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 관계의 축을 중시하다보니 어떠한 사람과도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런 저런 생각과 감정을 폭넓게 늘어 놓다 보니 남성보다는 생각과 감정이 더욱 세세하고 풍부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생각과 감정을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매체가 발달하고 IT산업이 최첨단을 구가하고 정치적 민주시대로 접어든 한국사회는 남.북분단에 따른 국가보안법 등에 의해 여전히 표현의 자유에 한계에 놓여 있다.개인의 생각과 감정의 자유에 따른 표현의 자유가 주류 이데올로기의 비위(脾胃)를 거스린다고 판단이 되면 어김없이 실정법의 저촉에 따른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게다가 정권유지를 위해 인위적인 사법의 잣대를 드리우기도 한다.개인이 생각과 감정을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표현하여 더 나은 사회발전을 기하는 목적이라면 시대착오,시대역행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또한 사람은 이기적이며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할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언동은 삼가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처사라고 판단한다.경우에 따라서는 침묵이 금이 되고 침묵이 은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 살아갈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수많은 얼굴과 색깔을 가진 생각과 감정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마흔여덟 명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과 작가의 해설에서 강퍅한 세태에서 다소는 위안을 안겨 준다.마흔여덟명의 작가가 남긴 명작과 강신주작가의 해설,그리고 철학가 스피노자의 감정의 요체를 통해 감정이 이렇게도 다채롭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뇌의 신호에 의해 말과 표정으로 타인과 세상과 소통한다.감정의 소통이 원만해서 기쁨과 환희로 이어질 수도 있고,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절망,분노,복수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감정을 가슴 속에 내내 삭히고 묻어두다 보니 한국인은 울화병에 많이 걸리기도 한다.마음 속에 꼭꼭 묻어 두고 발효식품과 같이 오래도록 삭힌 감정을 이제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끄집어 내어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그래야 삶은 더욱 활기차고 삶의 질도 양호해질테니까.

 

 우정이든 사랑이든 누군가를 알아가면서 나와 가까워지면서 기대와 설렘의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어 나간다.타인에 대한 감정은 대부분 겉모습에서 느끼게 된다.사적인 만남이든 공적인 만남이든 내면 속에는 감정이 조금씩 형성되어 간다.또 만나고 싶은 사람,만나야 할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다시는 만나서는 안될 사람 등으로 자신의 경험과 학습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그런데 사람과의 만남의 횟수는 서로가 끌리고 홀리고 설레여서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기만 하다.흔히 나는 상대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나에게 거리감을 두고 이리 저리 재고 있다면 애가 타도록 답답할 것이다.소심한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거절을 당할까봐 용기를 못낸 채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를 내내 기다리는 것이다.기다려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다행이지만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면 차라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고(告)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하지 않을까.사람은 기분과 감정이 죽 끓듯 하기에 기선을 먼저 잡는 것이 때로는 실효가 있다고 생각한다.지레짐작으로 자괴감에 빠져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감금시키는 행위는 두고 두고 후회와 회한으로 남을 것이다.

 

 마흔여덟명의 작가와 작품은 보니 나는 1/4 정도 밖에 읽지를 못했다.아니 읽었다 해도 줄거리와 여운 등이 선명하지 않다.강신주작가의 해설과 어드바이스도 이 글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다.이름만 내면 금방 알 수 있는 작가와 작품들이 잘 배열되어 있다.부제라고 할 만한 시적인 감성이 물씬 배어난다.땅의 속삭임,물의 노래,불꽃처럼,바람의 흔적이 바로 그것이며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땅,물,불,바람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어느 것 하나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우주 속의 창조물들이다.이러한 창조물의 무한한 혜택에 의해 유약한 인간은 감정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이다.이성보다는 감성과 감정이 우선이다보니 다양한 감정이 생성되기 마련이다.신경전달물질에 의해 행복,사랑,스트레스,복수,원망 등 다양한 호르몬이 인체내에서 분출한다.이러한 호르몬 가운데 행복과 사랑이 최고이지 않을까 한다.

 

 사랑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에티카에서 P79

 

 지금은 순결하고 고매한 사랑을 찾아 보기 힘들다.서로가 마음에 들어 결혼을 했다고 해도 살아보니 성격차,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쉽게 이혼을 한다.특히 인품과 성실함 등을 두고 연애를 하던 시절과는 달리 경제력과 신분 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이것은 인간의 이기적 본능으로 해결할 사항은 아니지만 성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긴 시간을 함께 이어 나가려는 인간만의 고귀한 정신을 돈과 물질,신분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사랑과 행복의 씨앗이 과연 토실토실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돈과 물질,신분 등에 대한 탐욕과 욕망의 끝은 과연 두 사람을 진정한 사랑과 행복으로 이끌어 갈 지는 미지수이다.진부한 얘기일지는 모르지만 (사랑을 전제로 하고)돈,학벌,신분 등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한편 맞지 않은 성격 등은 이해하고 기다리면서 생의 후반부까지 아무 탈없이 살아 가는 것이 참된 삶이 아닐까.또한 이왕이면 좋은 감정은 이기적이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나와 타자,사회에 끼치는 좋은 감정은 사회의 모습도 바꿔 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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