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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평점 :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고, 알아야 면장을 살아 먹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닐까 싶다.전자는 가혹한 독재정권과 같이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가 봉쇄되었을 때 속편하게 입닫고 사는 것이 낫다는 의미일 것이고,후자는 요즘과 같이 밥 벌어 먹을 기술과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소위 다양한 스펙을 쌓고 남들 앞에서 무식하게 보이지 않는 지식인의 행세를 해야 하는 것과 등가치가 아닐까 한다.인류 역사 이래 소수의 지배계층과 다수의 피지배계층이 존속되어 왔건만 소수의 지배계층이 다수의 지배계층을 위해 보편적이고 실질적인 시혜를 얼마나 베풀었던가.선거 문화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정치 후보자로 나선 이들 모두가 유권자들을 위해,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느니,머슴과 같이 유권자의 뜻과 의견에 따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등의 선심성 말들을 늘어 놓는다.그들이 선출된 후 과연 유권자,지역주민들에게 몇 퍼센트나 공약을 실천했고,얼마나 주민들과의 정례적인 대화,소통,간담회 등을 밀도 높게 했는가는 정치가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모습과 대동소이하다고 본다.정치가는 고도의 수사학적 레토릭이나 자신에 대한 홍보,선전 등의 프로파간다는 강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명예,권력상승에만 머리로 계산하는 모리배(謀利輩)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실상이다.
1960년대 태어난 내가 1970년대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초.중시절 아니 고교시절까지도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국가관이나 철학,주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관심은 커녕 당장 학교 성적,수능준비로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역사관,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자본가와 노동자 등에 대해서도 무지몽매했다.당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농사를 지어 식솔들의 배를 채워야 하는 부모님이 사회,나라의 동향 등을 들려 리가 만무했다.대학에서도 잠깐 사회학 서클에 가입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커다란 차이가 있었기에 중도에 그만 두게 되었다.그리고 군대,대학졸업을 거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학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비판능력을 배양할 겨를이 없었지만,다행히 잡학(雜學)수준이나마 어떠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꾸준히 책과 가까이 하고 있는 점이 내게는 정신적 자산이고 교양수준을 고양할 수가 있어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책과 가까이 하는 가운데 사회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창시절 내 머리 속에 주입되었던 선과 악,흑백논리에 치중한 나머지 사물,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이 매우 단편적이고 편협되었다는 자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며,신자유주의시대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고급인력들이 조직에서 배제되고 비정규직,임시직,파견근로자,아르바이트 등의 직종이 많아지면서 사회 양극화,소득 불균형,최고의 자살율,삶의 질 꼴치 등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를 바로 보자는 내 심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것은 사회성이 있고 지배층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가고 본의가 와전(訛轉)되기도 한다.단어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겉뜻과 속뜻이 이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예전에는 몰랐던 것이,애매한 의미로 자리잡은 것이 이번 《어용사전》에 실린 215가지의 단어에 함축된 비의(秘意)가 박남일저자의 논리정연한 뜻풀이와 해석,해설로 말미암아 진의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다.이 도서에 담긴 215가지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가 시대 및 주류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의해 독자가 받아들이는 의미전달이 바뀔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신자유주의 즉 자본주의 시대가 몰락하지 않는 이상 어용사전에 실린 단어가 제시하는 의미는 오래도록 개인과 사회를 분탕질하리라 예상된다.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를 오고 가는 의미와 해설을 음미하다 보니 문득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과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라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게 한다.신자유주의는 분명 소수의 돈과 물질을 갖은 힘있는 자들이 떵떵거리면서 살아가도록 제도화되고 천착된 구조라고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다.이번 정부가 경제민주화니 복지수준 향상이니 공약을 내걸고 있지만,실상은 지배계층은 지배계층끼리만 물질적 부와 사회적 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실정이며,국가 통치자가 대다수 피지배계층과 소통은 커녕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만 하다.불편한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고지능 수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한국은 분명 자본주의 사회이며 대기업 위주(줄푸세),공기업의 민영화,노동의 유연성,비정규직 천국의 상징국이 아닐 수가 없다.
저자는 국민 대신 인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인민이라는 말을 사회주의 국가에서 먼저 사용하다 보니 인민 대신 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일제 강점기 일본이 조선인을 황국신민화 및 길들이기의 의도하에 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서 일제잔재물이 아닐 수가 없다.저자의 말대로 국민 대신 사람이라고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일제잔재의 색채가 강해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마당인데 국민이라는 단어 역시 전제국가의 이미지가 강렬하기만 하다.소수의 지배계층,소수의 지배권력이 다수의 피지배계층을 지배,착취하고 있다.개인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려면 (인색하고 수전노와 같이 행동하지만)소수지배층이 다수 피지배층의 피와 땀에 의해 얻은 경제적 부를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과 자세가 필요하다.사회에 환원된 부와 재산을 힘없고 소외된 계층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이에 중요한 한국사회의 과제는 정치,경제가 미래를 위한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변혁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