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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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조직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해도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일이 고역스러워지면서 삶의 노예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몸으로 움직이는 노동이든 두뇌와 감정의 노동이든 보람과 가치를 느껴야 비로소 일이 즐거워지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에 매진해 나갈 것이다.부모의 물질적 지원으로 대학 아니 대학원을 마치고 들어갔던 직장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조직 및 직종이 아니라면 굳이 몸과 마음을 썩일 필요가 있겠는가.그것을 빨리 간파하고 재기를 하는 사람이 때로는 현명하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현실적으로는 다양한 여건과 사정에 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시간과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본다.

 

 전세계는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 들면서 사회와 기업의 조직,문화의 토양이 바뀌어 가고 있다.종신고용제,서열제라는 말은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하고,능력,성과위주로 바뀌어 가면서 고용문제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및 일용직,임시직,파견직과 같이 생계를 위협하는 양극화를 낳고 있다.학벌도 비슷하고 하는 일,노동시간도 비슷한데 손에 들어 오는 보수는 정규직과 그외의 직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만 있다.대기업은 신자유주의의 특혜 및 비호하에 거액의 수익을 창출하여 창고에 가득 채워 놓는 반면,중소기업이하의 기업은 대기업과 커다란 대조를 보여 주고 있는 상황이다.소득의 불균형,사회구성원의 양극화는 현재 및 향후 초미의 현안이 아닐 수가 없다.'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처럼 돈과 물질이 풍족한 일부 계층은 부패하지 않는 돈이라는 신비한 물질의 혜택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누리고 있다는 것이 상생과 복지문제차원에서 바라볼 때 기형적이고 사회구조를 낳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학자인 아버지의 후광과는 무연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는 일본의 중년부부의 흐믓하고 당당한 빵굽는 이야기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직접 탐방해 나서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우주의 모든 생물은 자연의 섭리,순환에 따라 생사가 한 번으로 정해져 있는데 종이든 동전이든 돈은 썩지 않는 자연의 반하는 현상에 염증을 느낀 와타나베 이타루저자는 한때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자신이 나아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직장 동료였던 마리와 결혼을 한 뒤 치바현 이스미(夷隅)에서 빵가게를 개업하고 장사를 하게 되지만 2011년 후쿠시마현 쓰나미 및 원전사고로 인해 와타나베씨는 물맑고 공기 좋으며 친환경적인 장소를 물색한 끝에 오카야마현 가쓰야마(勝山) 지방으로 이사를 한다.와타나베저자는 4년 여간의 제빵 기술을 체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빵을 만드는 전과정을 재래식에 가까울 정도로 손과 두뇌,아내와의 업무 분담에 의해 '다루마리'라는 제과점을 열게 된다.와타나베는 빵을 만들고 아내 마리는 손님들에게 빵을 판매한다.빵을 만드는 원료는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가쓰야마 인근의 농부들과의 연계에 의해 재료가 조달되고,와타나베는 빵의 원료인 천연 누룩의 제조부터 발효,숙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하나 하나 체득해 나간다.제대로 된 효모만을 고르고 배양하여 효모를 증식시키는 방법을 쓴다.일체 첨가물 및 방사선을 쏘이지 않기에 돌연변이도 생기지 않는 건강식이 아닐 수가 없다.비록 빵값은 타제과점과 비교하여 비싼 편이지만 인체에 유익한 빵이다 보니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도 늘고,인터넷 주문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와타나베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깨닫고 몸소 실천하고 있다.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의하면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부속물로서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술만이 요구된다"고 한다.기계에 의한 양산화가 가능하면서 판로가 확보된다면 수익창출에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인간은 기계의 부속물이고 기계가 사람을 조종하고 마는 것이다.또한 자본주의의 열쇠는 노동력에 있는데,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자본가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윤이 생기니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래서 와타나베는 친환경적이면서 농약,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일본밀을 고집하고 있다.대부분 외국에서 밀을 수입하는데 출하 전에 대량의 살충제를 뿌리고 있는 실정이다.국내에 통과작업이 끝나고 수입업체에서 제분하는 과정에서 과연 살충제의 잔류물이 완벽하게 제거되었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든다.'다루마리'제과점은 일본 술 양조에 쓰는 효모로 만든 주종 빵,통밀에서 효모를 발생시킨 전립분 효모 빵,호밀을 발효시킨 유산균종으로 만든 호밀빵,건포도를 발효시킨 건포도 효모 빵,맥아를 발효시킨 맥주 효모 빵을대표 메뉴로 삼고 있다.3일은 근무하고 3일은 휴무라고 한다.

 

 먹거리는 통째 먹는 것이 좋다는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이나 홀 푸드(Whole Foods)의 개념은 음식 전체에 생명이 깃들어 있기에 식품은 있는 그대로를 통째로 먹어야 비로소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채소나 과일을 껍질째 먹고,생선을 빼째 먹고,쌀이나 밀을 정백하지 않은 현미(玄米)나 전립분의 형태로 먹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건강하게 키운다는 생각인 것이다  -P188

 

 가슴 찡하고 훈훈한 에피소드가 있다.단골손님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께 빵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아버지는 빵을 참 좋아하셨거든요.돌아가시기 전에 꼭 빵을 대접하고 싶어요.다루마리의 빵을 드시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시면 좋겠다"라는 의뢰였다.평소보다 더 진심을 담아 빵을 구워 정성을 쏟아 보냈는데,얼마 후 단골 손님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저희 아버지는 다루마리의 빵을 드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입에 문 빵 한 조각을 맛있게 천천히 음미하면서,미소를 띤 채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그 댁 빵이 저희 아버지의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쫄깃쫄깃하고 자연의 숨결이 살아 있는 향이 가득 배인 빵 조각을 입에 물고 행복하고 편안한 자세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루마리 제과점의 옹골찬 장인정신과 인체의 건강을 우선시 하는 인본정신이 소리 소문없이 퍼져 나갔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고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 현상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개인창업도 만만치가 않다.자신의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세운 뒤 특화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와타나베 부부와 같은 빵만들기는 새벽잠을 설치면서 해야 하는 중노동이지만 아침 식사로 빵을 찾는 손님들의 기대와 설렘에 부응하고,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와타나베부부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보니 숨가쁘게 살아 가는 현대인의 삶과는 대조적인 모습에 상큼한 감동을 받았다.비록 수입은 적고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자본주의 속의 또 다른 자본주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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