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단촐하다 못해 공허와 고적감이 감도는 현대인의 주거생활은 시대적 흐름과 의식구조와 맞물려 돌아간다.한국전쟁,일본의 종전(終戰)이후의 (대략)15~20년 간을 베이비 붐(단카이)세대라고 부른다.이 기간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한 가정에서 낳은 아이의 수는 세 네명이 기본이며,대대로 이어져 온 대가족제도가 주류를 이루며,남.녀간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살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후처를 얻는다든지,전처와 사별하여 후처를 자연스레 받아 살아가기도 했다.한국의 1960,1970년대 초반만 해도 첩을 얻어 딴 살림을 차리기도 하고,(드문 경우이지만)처제가 언니집에 들락달락 하면서 형부가 처제가 선을 넘어 결국 한지붕 아래에서 언니,동생이 함께 살았던 경우도 있다.형부가 처제와의 불륜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언니,동생이 낳은 자식들은 이종사촌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법적으로는 형제자매로 살아가야 했다.또한 바람을 피우고 성격이 맞지 않고 늘 폭행으로 시달리기도 했던 부부관계는 사회적 의식(자괴감,불명예,자존감 등)과 분위기 때문인지 오늘날과 같이 빈번하게 이혼은 많지 않고 참고 견디면서 사는 것이 신상에 좋은 것인 줄로 알고 살았던 것 같다.

 

 일본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구미가 딱 맞는지 나오면 불티나게 팔린다.장르에 따라 독자층과 연령층이 다르겠지만 미스터리,스릴러,환타지 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그러한 가운데 이번 무라야마유가의 《별을 담은 배》는 미즈시마가(家)의 사연을 세대 순서와 관계없이 부모,자식세대,손자세대 구성원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들려 주고 있다.우선 할아버지인 시게유키부터 손녀인 사토미까지의 얘기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정사를 들려 주고 있다.읽다 보니 '아,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한국과 달리 근친간의 연애문제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다.또한 베이비 붐 세대인 시게유키의 맏이인 미쓰구의 노후문제 및 남성 갱년기의 증상을 그려 내기도 한다.특히 시게유키의 청년시절 대동아공영 차원에서 징집되어 중국에서 훈련을 받는 가운데 위안소에서 만났던 조선인 위안부와의 인간적인 인연이 삶의 종반부에 이르러 커다란 회한으로 남기도 한다.시게유키는 징집되어 생사가 불투명한 가운데 후손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인 요리코에게 임신을 시킨다.그후 시게유키 집안에 가정부인 시즈코가 들어와 가사를 돕는데,시게유키는 시즈코와 관계를 갖고 사에를 낳게 된다.전처(前妻) 요리코가 죽고 후처로 시즈코를 받아 들이는데 요리코 사이에서 태어난 미쓰구,아키라는 사에,미키는 다른 남자로부터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지만,세상은 비밀은 없다고 했듯 사에는 시게유키에 의해 태어난 자식으로 알게 된다.이 문제로 커다란 풍파는 없었지만 사에는 이복오빠인 아키라와 선을 이미 넘어서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지만,아키라가 집을 나가고 사에는 전문학교에 진학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후처 시즈코가 지주막하출혈로 세상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된다.시게유키는 시즈코가 후처이지만 시즈코가 생의 후반부에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녔기에 죽어서도 지팡이에 의지하여 행복한 내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팡이를 관(棺) 속에 넣어 준다.시게유키는 목수 출신이고 건축업을 해 온 사람이며,큰 아들 미쓰구는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면서 딸과 같은 나이의 여사원과 아슬아슬하게 바람을 피우고,텃밭 가꾸기를 좋아하게 되면서 널찍한 밭을 알아 보러 가기도 한다.미쓰구 아내는 교사로서 교감직까지 맡은 중견급 교육자이지만,교육자라고 해서 자식도 공부를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딸 사토미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부모가 기대하는 공부 잘하고 성적 올리는 일에는 남 보듯 하고,이성문제,교우들과의 쏘다니는 등 잔잔한 풍파가 일기도 한다.맞벌이 가정에서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시게유키의 막내 딸 미키는 모델 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하라라는 남자와 사귀기도 하지만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사과해야 할 상대가 살아 있는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보거라.이 할아버지는 사과하고 싶어도,상대가 모두 저 세상으로 가버렸어.엎드려 빌고 시피어도 영원히 늦었다."  -P359

 

 6편의 이야기들이 내용은 다르지만 시게유키 집안의 구성원들의 삶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시간과 공간을 촘촘하게 수놓고 있다.마지막 이야기인 《별을 담은 배》에서는 시게유키가 젊은 시절 중국으로 징집되어 위안소에서 만났던 조선인 강민주와의 인간적인 만남과 강압과 억울하게 끌려가 비인간적인 처참하게 짓밟히면서 일본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지만 강민주는 조선인으로서 자존감과 자주성을 잃지 않는다.그리고 시게유키는 기나긴 삶을 이어오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자들과의 나누는 언어,공기,아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그래서 어떠한 인연으로 만났든 옛 친구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시케유키는 이제 자신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받아 들이면서 먼저 간 두 아내의 묘지에 분향한다.한시절 자신과 몸을 섞어 가면서 사랑을 나누고,한지붕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던 별과 같은 존재들이 이제는 떠나고 없지만,별을 담은 배가 자신을 맞이하려 곧 찾아 오기를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인간의 삶은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전해 주는 에피소드들은 삶과 죽음,사랑과 이별,고통과 상처,용서와 화해 등이 아로새겨지는 점이 어느 집안이든 비슷비슷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