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양우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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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와 상식이 아직은 정착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엄연히 성문법에 의한 헌법이 있고 그 아래 형법,형사소송법,민법,민사소송법,상법 등 육법이 존재하면서,법에 저촉된 자는 법의 잣대에 의해 조서,심문,증언,판결의 수순을 따르는 것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정치민주화가 이룩되어 27년여 세월이 흘렀건만 일반인이 사법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신뢰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비춰진다.사법계에 몸담고 있는 형사,검사,변호사,판사 중에는 원칙과 소신에 입각하여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법에 의한 심판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이것은 혹 힘없는 자가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수형을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엄격하고 공정한 법의 룰을 지키려는 사법계 인사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일명 정경유착에 의한 정치형 사법인사가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정치민주화를 선언했던 1987년 이전에는 군사독재에 의한 유신헌법,국보위 등이 헌법과 형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시대였다.이념과 사상으로 두 동강 난 한반도는 아직까지도 빨갱이니,좌빨이니,용공세력이니 하면서 주류 이데올로기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위에는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미운 털을 뽑아 내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민주화가 천착이 되지 않았다는 증표이다.사회구성원들의 교육수준,의식수준이 높아진 현시대에서는 돈과 물질을 앞세운 기득권,보수계층들이 오히려 법을 우습게 보고 힘과 권력을 앞세워 그들만의 살 길,그들만의 세(勢)를 불려 나가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인상을 불식하기가 어렵다.

 

 1979년 박정희정권이 종언을 고하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정화운동이라는 국민의식개혁 및 반부패 척결 차원에서 무고한 인사들이 얼마나 탄압과 희생을 받았던가.1980년대 초 학원가는 하루가 멀다하고 군사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면서 정치민주화를 외쳤던 시절이었다.1980년대 초 국민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고 지배자가 대중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했던 우민정책이 바로 3S(스크린,스포츠,섹스)정책이었다.그러한 가운데 대학가에서는 사회서적을 중심으로 동아리 활동을 전개하는데,이것은 용공세력이고 사회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라고 규정하면서 이러한 토론모임자들을 색출하는데 주력하게 된다.서울지역은 서독권,부산지역은 부독권(일명 부림사건)으로 불리워진 것이다.

 

 고(故)노무현대통령은 원칙과 소신이 강하고 이를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다가온다.그가 부산시내 대학가의 사회서적을 중심으로 한 학습활동을 용공세력으로 간주하면서 무고한 학생들이 철창신세를 지고 몇 년 간의 수형생활을 해야만 했던 암울했던 시절을 《변호인》은 사실에 입각하여 주요 등장인물과 법정(4차 공판,종국 판결까지)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다.《역사란 무엇인가》,《전환시대의 논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해방전후사의 인식》,《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민족경제론》 등의 도서가 당시 사회과학을 학습하고 토론하던 도서였다.계엄법과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것이고,죄목은 이적 표현물이 담긴 불온서적을 읽고 반국가 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했다는 것이다.책 읽었다고 잡아가는 게 말이 되지 않을 뿐더러 최조해서 구체적인 죄를 짜깁기하는 식이었다.공권력이 말하는 '짜고 치는 고스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림사건의 공판이 진행되면서 노무현은 법조문의 조항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조목 조목 판사에게 들려 준다.그의 말이 판사의 귓등에 들어올리가 만무였겠지만 피해자 국밥집 아들 진우가 구타 당했던 곳을 찾아 내고,피해 학생들의 응급처치와 치료를 담당했던 윤 중위의 명확한 증언은 검사,변호사,판사를 비롯한 법정의 분위기를 술렁이게하며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한 정적이 감돈다.학생들은 사회학도로서 순수하게 독서모임을 갖으면서 미래의 자화상을 그려 나갔을텐데 무고하고 증거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시의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정작 피고는 고문 형사와 조작 사건을 지휘한 검찰 그리고 군사정권인데도 말이다.그후 노무현은 박종철군 물고문사건의 포악한 정부의 처사에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그는 법조인으로서 집시법이라는 실정법을 위반한 죄목으로 또 한 번 법정에 서게 된다.부산지역 142명의 변호사들 중에 99명이 노무현은 변호하러 법정에 출정했으니 결과는 당연 노무현에게 승리의 여신이 갔던 것이다.노무현은 국밥집과의 인연이 불의와 억지스러운 국가보안법에 맞서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참된 변호인으로 오래도록 인식되고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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