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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평점 :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는 시간과 세월 속의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떡살과 같이 차지게 뭉쳐져 떼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부부 관계로 말하면 '금슬(琴瑟)이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고,반면 견원지간(犬猿之間)과 같은 관계도 있다.그런데 아무리 좋은 관계라고 해도 늘상 보고 부딪히다 보면 의견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을 때가 왕왕 있기 마련이다.이럴 때 상생의 차원에서 대세적인 안목으로 의기투합을 하여 서로의 좁혀지지 않았던 의견 충돌,이해관계는 타협과 절충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문제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내지 다수가 한사람을 놓고 속칭 '위신과 체면'을 깎아 내리고 중상모략,비하,이간질 따위로 개인의 삶을 온통 망가뜨리려는 사회적 왕따 현상이 아닐까 한다.
사회는 엄연히 법과 상식,정의가 존재하고 있다.이러한 사회적 기본체제가 존재하기에 법에 저촉되지 않고,상식과 정의의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 행동을 하고 산다면 이 세상은 그야마로 '파라다이스'천국이 아닐까마는 그러한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래서 어느 시대에서든 주류 이데올로기가 있고 법과 상식,인습이 있어 그에 합당하게 잣대를 드리워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다.그렇다면 지금은 21세기 첨단산업이 발달하고 SNS로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초커뮤니케이션 시대를 맞으면서 소소한 일부터 굵직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매체보다 더 빨리 광대역으로 퍼져 나가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정치적 수준은 온 길을 되돌아 가서 다시 걸어 오고 있는 상황과 흡사하다.무엇이 그토록 사회의 발전,사회구성원과의 이질감을 한층 더 높여만 가고 있을까?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어요.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눈감고 귀를 막고,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P196
5월23일이 되면 어느덧 노무현대통령 서거 5주년이 되는 셈이다.내 생애 노무현대통령만큼 소탈하고 격식이 없었던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크게 뇌리에 새겨져 있다.이를 두고 보수계층에서는 비하발언,깎아 내리기 발언을 일삼는다.일반인으로서 대통령 노무현을 바라 보았던 때와 퇴임 후 자연인 노무현을 바라 보았을 때의 감회는 크게 다른 것이 없다.나는 자연인 노무현을 직접 뵌 적은 없다.1989년 5공 청문회 생방송을 TV를 통해 접했는데,전두환,정주영,장세동 등에 대한 서릿발과 같은 매섭고 매의 발톱과 같은 날카로운 공격적이며 당당했던 언조가 무척 인상에 남는다.그리고 노태우 정부 시절 여소야대를 인위적으로 야합에 의해 뒤바꾸려 했을 때 노무현이 국회의석에서 명패를 던지는 모습이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하기만 하다.김영삼에 의해 정치입문을 하게 된 노무현은 그 뒤로 김영삼과 정치적 길을 달리하고 김대중과 함께 정치의 길을 걷게 되지만,국회입성에 몇 번이나 좌초를 겪는다.그는 시대를 앞서간 미숙아였을지로 모른다.또한 '바보 노무현'이 입에 거론되면서 노사모가 대전 PC방에서 불이 붙게 되면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자연스럽게 전국을 달구게 되어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학벌의 열등감을 사법고시 패스를 하면서 노무현은 (잠깐)판사를 거쳐 수임료가 좋은 세금 전문 변호사에서 억울하게 공권력에 짓밟히던 부림사건을 맡게 되면서 그의 신분은 인권 변호사로 탈바꿈하게 된다.엊그제 방영되었던 《변호인》은 아직 관람을 하지 못했다.불의가 정의를 짓밟고 반칙과 편법이 원칙과 정도를 이기는 것을 보면 누구든 분노를 느낀다.당시 부림사건을 맡았던 그는 사회적 공분(公憤)을 느끼고 그 사건에 전력을 기울였으리라.그의 성격상 공분을 느끼면서도 불합리한 현실에 굴복하면 자신의 삶이 비천해 보이게 되고,부당한 권력에 억울한 고초를 당하는 타인을 돕는 것은 스스로 옳은 삶,존엄한 인생을 사는 행위라고 믿었던 것이다.영화 《변호인》에서 그는 송 변호사로 분장했는데,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대목이 가장 그답고 가슴 찡한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22인의 단상과 회고담을 읽고 있노라니 노무현은 늘 남이 가지 않으려 하는 새로운 길을 구상하고 모색해 나가려 했던 진보(進步)의 인물임에 틀림없다.지역갈등 타파,국민통합,복지 문제 등 한국사회가 함께 살아가야만 할 길을 찾고 실천하려 노력을 경주했다.그가 비록 살아 있더라도 신자유주의는 완화될 조짐은 크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다만 비리,편법,몰상식,부정의 등이 권력계층에 의해 관행적으로 또는 힘의 역학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에 대한 바른 소리,쓴소리를 당당하게 소리내어 줄 위인이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기만 하다.게다가 한국 사회는 친일수구세력들이 득시글대면서 부와 명예,권력을 대대손손 누리고 있으며,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친일 세력 청산문제도 매우 미온적일 뿐이다.일본에게는 과거사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반면 친일 세력 청산문제,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극찬,교학사 교과서 특혜를 베푸는 등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노무현대통령은 2006년 3.1절 기념사에서 과거 역사 문제를 이렇게 말했다.
"이웃나라에 대해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자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도 잘못 쓰인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P250
지금 한국사회는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다.사회 구성원의 소득불균형,비정규직 양산,공무원의 기강해이는 물론 권력층의 온갖 특혜와 비리,편법이 다반사처럼 진행되고 있다.비단 5월이 되어서야 자연인 노무현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실종된 정의와 상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말로만 떠들어 대지 말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연대(聯帶)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인간 노무현은 몹쓸 정치의 역학에 밀려 이 세상과 하직을 했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사람이 사람답게 살맛 나는 세상'이 언젠가는 이 사회에 도래할 것이다.그 희망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남은 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는지도 몰라.우리의 마음이 그 이름을 불러 준다면,마른 풀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을 푸르게 물들일지 몰라."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