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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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한국,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겪었던 고통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은 '홀로코스트'로 수많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대가로 빌리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를 방문하여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폴란드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하였다.서독은 그후 2차 세계대전의 패배 및 책임에 대한 대가로 전후 보상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에 반해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한국,중국 등에 안겨준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진정한 사과와 물질적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교활하고 음흉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자국의 영토확장 및 관동대지진,인구증가 등으로 인해 영토확장만이 그들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면서(군과 관료 등) 만주국 건립,대동아공영권 등을 획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다리 역할로 군수물자,식량 등의 확보 및 교두보가 되었던 것이다.그런데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일본은 731부대(이시이 시로 대장)에 의해 중국인,조선인 가릴 것 없이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사람을 벌레,짐승과 동일하게 대하고 강간하고 살육하며 (시체를)불태우는 것을 재미거리로 삼았다는 것이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다.일본제국이 한국,중국에 자행했던 만행은 객관적 증거와 기록,증언이 충분히 남아 있건만 그들은 아직도 제국주의적 레토릭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삼킬 길이 없는 것이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에서 이미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이번 글에서는 난징 대학살에 대한 것이 매우 충격적이다.당시 난징에 침입한 일본군에 의해 강간과 도륙,생매장,방화 등으로 난징시민들이 충격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재미 2세 중국인 아이리스 장(張)저자는 일본 우익분자들의 협박과 회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난징에서 자행되었던 일본제국의 실상을 자료와 증언 등을 접하노라니 국력,위정자의 국가관 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베이징 루거우챠오(蘆溝橋) 사건으로 발발된 중.일전쟁은 당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대장정 와중에 있었고,국민당 장졔스는 부하 탕셩즈에게 일본제국군과 잘 협상하라는 당부만 남기고 난징에서 발을 뺀다.중국 국민당 탕셩즈와 일본제국군 간에는 한치의 양보와 협상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군사면에서 절대 우세인 일본군 앞에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삼십 육계' 줄행랑을 치고,미처 도망치지 못한 난징의 시민(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만이 무참하게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산 채로 묻기,사지 절단,불태우기,동사(凍死)시키기,사나운 개의 먹이로 던져주기 등의 고문과 윤간,강간도 필설로는 끝이 없을 것 같다.

 

 1937년 겨울부터 1938년 봄 시기에 난징은 당시 중국의 수도이면서 유적과 문물이 찬란함을 자부심으로 살던 난징시민은 무능한 국가지도자와 사람을 사냥하는 일본제국군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당시 나치주의자이며 게슈타포로부터 난징대학살에 대한 침묵을 명령받은 존 라베는 난징 시민을 난징 안전구로 수용시켜 25만 여명의 시민을 보호했다.독일과 일본이 동맹국이었던 관계로 난징 안전구 소속 인사들에게는 일본제국군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당시 난징인구가 65만 여명이었는데,난징 대학살로 인해 35만~40여 만명이 무참하게 희생된 것으로 보여진다.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미.일 양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하여 평화조약이 맺어졌는데,전후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채무 이행 능력에 대한 한계의 시인 및 역무배상(役務賠償)으로 대일강화조약이 맺어졌던 것이다.얄타회담(미.영.소)의 협약을 소련이 어기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해야만 했다.(트루먼 독트린이 미국이 한반도를 제외하고 태평양 지역을 보호.관리한다는 것으로 김일성이 착각하여 한국전쟁의 기화가 되었다) 난징 대학살에 대한 비극과 무고한 시민들을 고문,강간,방화,생매장,개의 먹이로 삼았던 일본제국은 아직도 참회는 커녕 변명내지 난징 대학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개탄할 일이다.증거와 자료,증언이 아직도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반성은 커녕 궤변만 늘어 놓고 있다.당시 일본제국군의 책임자 14인(황족 출신도 포함)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되어 일본 지도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존경을 받고 있다.비단 난징 대학살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이 진정성 있게 해결하지 못한 미진한 문제는 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해결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동일한 역사의 반복은 역사를 잊으면서 발생한다는 사실도 이 글을 읽으면서 크게 느낀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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