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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소설은 언제 읽어도 재미와 유익함을 안겨 준다.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예리한 상상력과 통찰력은 독자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과 조화를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지난 과거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다만 '역사'라는 것이 당대를 이끌던 위정자와 주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필되었기에 객관적인 균형 감각을 온전하게 살릴 수가 없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특히 한반도의 역사는 매우 굴절되어 있고 온전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아 청소년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분별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게다가 한국사에 대한 학습량이 적고 주된 과목이 아닌 탓에 설렁설렁 시험준비시에만 반짝하기에 지난 역사의 본류를 인식하고 통찰해 가는 것은 요원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사에 대한 학습은 고작 중.고교시절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당시(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에는 주로 사지선다형 문제를 내놓고 해답을 요구하고 암기과목에 속했던 만큼 벼락치기 공부가 대세였다.역사를 좋아한다는 동급생 중에는 대부분이 중국 《삼국지》 및 《수호지》 등을 즐겨읽고난 뒤 의기양양하게 그 내용을 재잘거리기도 했다.또한 고교시절 사회과 교사의 경우에는 중국현대사의 큰줄기인 《대장정》에 대해 실타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매시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수업의 지루함을 달래 주기도 한 반면,흥미진진하게 한국 역사를 접할 기회는 극히 적었다.물론 1970년대 비민주적인 인권탄압과 억압된 정치상황도 한 몫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설이 길어졌는데,이제 지나간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을 필요가 있다.지금은 물러난 후진타오 중국 서기가 재직하던 시절(2002~2012년) 중국 정부 및 사학계는 한국의 고대사 부분,즉 고조선과 고구려 등의 역사를 심히 왜곡하고 있으며,이를 흔히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고 부른다.특히 고조선과 고구려 등 고대사 부분에 대한 인식은 극히 한반도로 축소되어 있다.《사기》 등 중국 사료 연구 분석과 유물유적 분석에 의하면 고조선의 한부분인 한사군(漢四郡)의 지정학적 위치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 허베이성,랴오닝성 서남부에 산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역사학계와 연구원,한.중 양국간의 이에 대한 견해 차이가 크고 친일사관에 의해 축소된 고조선의 유역은 반드시 변경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김진명작가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예민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나간다.주로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드는 역사 인식과 작가만의 공들인 연구와 해박한 지식을 교묘하게 잘 풀어내 주고 있다.예리한 통찰력,번뜩이는 기발한 발상,초(秒)를 다투는 현장감과 스릴감,그리고 독자들에게 주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니 여운이 오래도록 남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역사 인식과 작가만의 소설 구상에 의해 《고구려》 시리즈가 독자들 곁에 다가섰다.고구려 시대에 대한 역사 학습이 일천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주로 광개토대왕,장수왕,영양왕 등 전쟁과 관련한 영웅담 및 영토확장 문제에 치중되어 있어,기타 고구려 왕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본다.중국의 동북공정 및 한국 고대사 부분에 대해 보다 더 자주적으로 살펴 보는 계기를 마련한 김진명작가의 선도적인 작품 구상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까지 들게 한다.
우선 1권~5권을 완독(緩讀)을 하게 되어 뿌듯함마저 든다.각권마다 주제 및 내용 전개가 조금씩 다르지만 고구려의 호방한 기상과 고토회복 그리고 주류 세력보다는 민본주의에 가까운 스토리 전개가 주인공 을불(乙弗)의 행적을 통해 전반에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서천(西川)왕의 아우인 안국군(安國郡)이 숙신족(肅愼族)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자 봉상왕(烽上王)은 자신의 숙부 안국군과 아우 돌고(咄固)를 왕권강화 차원 및 그의 못된 성정(性情)에 의해 희생된다.안국군은 생전 종손자(從孫子) 을불에 대해 장차 고구려를 이끌어 갈 기재(奇材)로 삼는다.이러한 왕족 간에 불화(不和)가 계속되자 을불은 고구려 땅을 벗어나 안국군의 주무대였던 숙신 홀한주성으로 떠나게 된다.을불은 자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기에 이웃 나라인 낙랑(樂浪)에도 들르게 된다.마침 동맹제가 있어 무사들의 무예를 겨루기도 한다.을불은 낙랑의 무예총위 양운거의 눈에 잘 보여 무예술을 전수받기도 한다.당시는 3세기 말의 고구려 상황이고,한사군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낙랑을 비롯하여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족이 서쪽과 북쪽에 포진에 있었다.진(晉)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낙랑으로 진의 유민,세력들이 유입되어 오고,낙랑은 태수 최비(崔琵)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었다.선비족은 모용외(慕容嵬)를 주축으로 주변국과의 힘의 역학을 가늠하고 있던 시대였다.특히 진이 내전에 휘말리면서 유목민족인 선비족은 남하를 꾀하며 영토확장을 호시탐탐하던 시기였다.무예총위 양운거 부녀가 낙랑 태수에 의해 무참하게 버려지면서 둘은 잠시나마 을불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고구려로 피신을 하는 것으로 1권은 막을 내린다.
안국군의 유지를 받들어 장차 고구려왕으로 나뭇꾼,소금장수로 와신상담을 하던 을불은 나름대로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간다.낙랑땅에 지천으로 깔린 철을 이용하여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마련하여 고토(故土)인 낙랑을 되찾는 것이다.무예총위의 딸 소청과의 만남,그리고 고구려 출신이면서 낙랑에서 주 대부와 그의 딸 아영과의 만남은 이후 을불에게 어떠한 관계로 발전되어 갈 것인지 무척 기대가 간다.단순한 로맨스로 흐를 것인지 아니면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치밀한 지모(智謀)에 따른 정략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3세기 경의 고구려 주변의 나라들의 개요를 주요 인물들의 동태를 묘사하면서 을불의 향방이 어떻게 흘러갈 지가 관건이 아닐 수가 없다.1권이 고구려의 서막이니 버려진 왕족으로서 을불이 차지하는 역할은 점입가경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