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아송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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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지식인의 비겁성과 무기력성

 

  현대 중국문학사에서 중국사회의 부조리와 모순,부패,음산함을 밖으로 꺼내 작품화하는 작가들이 몇 몇 있는 것으로 안다.대표적인 작가가 모옌,리루이,한샤오꿍,짱웨이,옌롄커,위화 등이 아닐까 한다.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정부가 사회비판적,내부고발적인 작가들에 의한 작품은 마냥 달갑지만은 아닐 것이다.특히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치 민주화 면에서는 56개의 소수민족과 의식수준이 높은 지식인의 행보가 중국사회가 안정되어 나갈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중국 지도부는 촉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인 바,이번 옌롄커에 의에 쓰여진 《풍.아.송은 중국 사회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상 지식인(지식분자)들의 무기력,적당한 타협,권력욕의 베일을 적나라하게 들춰 냈다는 점에서 약간의 수치심과 불명예,모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경(詩經)의 일부 

 

 

시경 간요(簡要)

 

 이 글은 중국 시경(詩經) 305편에 나오는 풍(風,165편),아(雅,100편),송(頌,40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중국사회의 현상과 인물들의 역할 등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시경은 황허강(허난성 뤄양부근) 유역을 공간배경으로 주초(周初)~춘추초기에 이르기까지의 민요로서 리듬감이 느껴지는 시모음이다.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풍(風),공식 연회에서의 의식가인 아(雅),국가 종묘제사에 쓰이는 악시(樂詩)인 송(頌)로 나뉘어져 있는데,상고인(上古人)의 유유한 생활,현실정치 풍자,학정에 대한 원망이 도드라지게 나타나 있다.후일 정현(鄭玄)이 주해를 붙인 후에 모전으로 남게 되면서 모시(毛詩)로 불리고 있으며,당대에 이르러 오경정의(五經正義)로 자리매김되면서 경전시하고 있다.이 작품은 2008년 2월에 발표되고 중국 당국의 통제.검열에 의해 민감한 부분이 많이 삭제가 되었지만 원작이 그대로 살아있는 타이완의 작품이 그대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줄거리

 

 우선 이 작품이 중국 최고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겨냥한 지식인의 무기력함,야합,권력에의 아부 등을 초현실주의에 입각하여 리얼하게 그려 내고 있다.글 속에서는 칭옌(淸燕)대가 학문의 전당 배경으로 나오고,주인공 양커와 부인 자오루핑 그리고 내연남 리광즈가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다.글의 첫 부분부터 심상치가 아닌 듯,벌건 대낮에 양커의 침실에서는 부인과 리광즈가 알몸으로 한바탕 정사에 한창인 것을 쳐다볼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양이 앞에 쥐와 같은 꼴'을 보여 주고 만다.첫장면부터 교수라고 하는 지식인들의 무기력함,비열함,불쌍함,나약함의 전초전이 될 줄이야.이것은 현대사회인들이 돈과 물질,명예,권력의 속성에 깊게 휘말리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아부하면서 돈과 물질,권력,명예,성의 유희를 즐기면서 삶을 허비하는 나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주인공 양커는 중국 고전문학인 시경을 연구,고찰하는 대가이고,아내 자오루핑은 영화영상학과 교수이며,리광즈는 칭옌대의 부총장으로 있다.그런데 왜 루핑은 남편 양커를 '소 닭 보듯' 할까? 그리고 양커는 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목불인견의 꼴을 보고도 저자세로 나와야만 할까?

 

 어느 나라이든 문학,사학,철학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듯 중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다.다행히 양커는 고전문학을 숭상하는 인물로서 고대 중국 시가인 시경의 본류를 찾아 탐사,발굴하려는 자아의식이 깊고,그것에서 자아존재를 찾으려 한다.교내에서 제자들과 고비사막에서 불어 오는 모래폭풍을 인간띠로 만들어 막아 보자는 의도하에 퍼포먼스를 발휘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6월 4일(1989년 6월 4일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천안문사태)에 이러한 행위를 보이면서 대학 총장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고 만다. 양커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다.양커는 정신병원 생활을 길게 하지 못하고 탈옥을 하면서 자신이 그리던 시경 연구를 위해 자신의 고향 쳰스촌 쪽으로 내려 간다.하지만 그는 고향 근처의 천당(天堂:하늘)거리에서 사창가의 처녀들을 만나면서 그녀들에게 다른 길을 찾아 가라고 강력 권유를 하는 한편,오래 전에 약혼했던 양쩐을 만나면서 못다한 회한을 나누기도 한다.링쩐은 생활욕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망이 높은 아녀자이다.첫째 남편이 남긴 빚을 갚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나이 많고 돈많은 남편을 만나 운좋게 재산을 상속 받으면서 재산을 늘려 나가지만 결국 어찌된 일인지 비극적인 자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한국의 작은 읍과 같은 규모의 공간배경 속에서 누군가 죽게 되면 향장의 주관하에 전통 장례식이 예식에 따라 치뤄지게 된다.중국 전통 장례식의 절차,인습,풍경을 인식하고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그런데 한겨울 날 링쩐의 관 위로 나비들이 날아 오면서 링쩐이 생전 못다한 못잊도록 그리운 사랑의 메시지라도 되는냥 살포시 관 위로 날아 왔다 날아 갔다를 반복한다.이 광경을 두고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臺) 화신이라고도 한다.가슴 뭉클한 감동이 아닐 수가 없다.또한 링쩐은 자신의 관 속에 양커의 옷,신발,책 등을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으로 남긴다.양커는 이 내막을 알게 되면서 기꺼이 자신이 입고 쓰던 것들을 양쩐의 관 속에 넣어 준다.그런데 양커는 링쩐의 딸 샤오민에 대해 불타는 욕정과 사랑이 싹트지만 샤오민이 목수 리씨와 결혼을 하게 되버리자 그는 미친듯 목수 리씨를 목졸라 죽인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새해가 되어 집으로 연락을 하지만 리광즈의 목소리를 듣고 그만 자신의 고향에서 지내기로 한다.천당에서 만났던 어린 아가씨들이 알몸이 되어 양커에게 새배를 올리고 양커는 두둑하게  세뱃돈을 준다.그리고 마음을 다잡아 숙사로 돌아가는 양커 앞에 루핑과 리광즈는 성행위를 하고 난 뒤였고,루핑은 양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루핑은 리광즈 덕분에 신분상승이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쥐어 부러울 것이 없다는 듯 양커를 남의 집 강아지 취급을 한다.

 

 자아존재를 찾아가는 양커

 

 이렇게 양커는 자신의 집에서든 교내에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보지도 못한 채 다시 시경의 기원을 찾는다는 일념하에 천당에서 만났던 아가씨들과 교수들이 합심하여 글자가 새겨진 돌을 찾기도 한다.그러한 것이 양커의 삶의 목표이고 자아존재를 찾아가는 길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황허 유역, 특히 바러우(耙楼)산맥을 어머니 품으로 삼고 있는 허난성 가장 서쪽 변방에 《시경》의 기원을 찾으면서 양커는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존엄이 가득하다고,아무도 남을 속이지 않는다는 진정한 천당을 만나고 몸과 마음으로 체현했을 것이다.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환형 관람석 앞 무대 위에서 양커를 비롯한 교수들과 아가씨들이 누가 멀리 오줌을 갈기는지 내기를 하는 장면이었다.양커는 이러한 고성(古城)의 신생활 속에서 모든 사랑과 자유,과학과 진리,존엄과 공정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먹고 자고 일하는 것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변했다고,모든 문제와 갈등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꽃향기를 풍기며 아름답게 변해갔다고 자위를 했다.

 

 흑탄과 황탄이 교차하는 중국 사회의 지식인

 

 시경이 탄생한 허난성 황허 유역을 따라 양커는 자아존재를 제대로 찾았다.그는 교수로서 대학에서 찾지 못했던 사랑과 자유,과학과 진리,존엄과 공정을 모든 면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무기력하고 비겁하고 집안 통제도 못했던 양커는 광기 서린 주구(走狗)와 같고 점잖은 양반과 같은 학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옌롄커작가가 말했듯 현대 중국 지식인의 나약하고 비겁하고 권력에 영합하려는 속물근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거무스름한 가래(黑炭),누런 가래(黃炭)이 뒤섞인 중국 엘리트 사회의 속성을 누군가 언젠가는 고발할 것이지만,옌롄커작가는 용기와 담대함으로 초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양커,자오루핑,리광즈가 비겁하고 무기력한 지식인이라면 양커의 첫사랑 링쩐의 삶과 그에 대한 변치않는 연모의 정은 가슴 훈훈하기만 하다.나아가 옌롄커는 향토성 짙은 소재와 배경,인물들의 언행,전통 관습을 수채화처럼 농담을 적절하게 그리고 있는 점이 매우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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