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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 장정일의 독서일기 ㅣ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장정일저자에 대해서는 귀동냥과 눈요기를 많이 했기에 저자에 대한 감(感)은 어느 정도 갖고 있었던 셈이다.약간은 이단아적인 인상이지만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이 강한 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언론매체에서 그에 대한 프롤로그식 소개와 삶의 역정을 살펴보니 중졸의 학력에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걸어 오고 있다.삶의 목표가 뚜렷하기에 뚝심과 집념으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갖춘 지식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어찌되었든 그의 작품을 늦게나마 접할 수가 있어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흔히 그가 남긴 작품들을 두고 일상을 일탈한 이단아,반항아적인 경향이 짙다고 하는데,일반인의 시각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크든 작든)거리를 두고 예리하게 해부하고 분석해 내는 힘은 깨어있는 시민의식의 발로이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기득권층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모순되고 부조화를 보이는 사회제도 및 사회현상에 대해서 불편한 의식을 드러내어 짐짓 모르는 체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환기 및 각성을 시켜 주고,사물,사건 등에 대해 단편적이고 단면적인 것에만 추종하는 이들에게는 사회체제 및 사회현상이 안고 있는 다양성과 부조리함을 공유하자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어느 나라이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주류 이데올로기 계층에 의해 사회 및 국가의 흐름이 흘러 가고,때론 시대를 역행하기도 한다.기득권층이 소수계층이면서 돈,명예,권력,물질의 수혜를 절대적으로 받으면서도 다수계층과의 괴리감과 불협화음이 크기도 하다.다행히도 지난 한국 역사 속의 인물들의 행적을 쫓다 보면 잘못된 사회 제도,민중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분연히 일어서기도 하고,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희생의 면모를 보여 주었던 분들이 참으로 많다.그러한 면에서 장정일저자의 이번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세 번째로서 그가 읽고 느끼는 단상들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읽었던 칼럼 형식 내지 서평형식으로 되어 있는데,마치 밥을 앉히기 위해 쌀을 씻기 전에 체에 뉘와 모래 등을 건져 내는 정성이 담긴 서평과 같은 감각이다.인지도가 높고 전문적인 글쓰기 작가이다보니 각출판사에서 따끈따끈한 신간들이 우편물로 전해지는 것 같다.수많은 도서를 읽다 보니 저자의 머리 속에는 도서의 장르,내용 등이 연대,시대,인물,사조,유파 등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고,신간을 받아 보게 되면 어떻게 서평을 전개할 것인가에 댛 이성과 논리의 잣대가 저자의 뇌리를 냉철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 글을 읽다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사회현상 및 시사문제,내가 이미 읽었던 도서와 겹치는 경우도 꽤 많았다.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갖고 있는 시각과 대동소이한 면도 있고,내 생각과 논리의 한계를 뛰어 넘어 논객의 면모를 그대로 들려 주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부동산 거품이 꺼진 상태에서 하우스 푸어로 살아 가는 계층의 고충,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과 대화의 부재로 인한 괴리감,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보수.진보층의 개념,성(性) 표현에 대한 시각의 차이,역사 교과서에 나타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개인과 사회의 안정적인 문제점 등을 비판과 이성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으며,나 또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자연스레 모아졌다.특히 한국상아탑 안에서 인문학자들의 유형 네 가지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대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부고발자적인 시각이 이 글의 중점내용이고 특징이 아닐 수가 없다.
인문학자의 네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통찰가형(천재),소크라테스형(혹은 비판가형),사변가형(전문가.기술자.분석가로 불리지만 해설자나 추종자형이라고 해도 무방함),저널리스트형
저자는 현재의 대학 교육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를 극복할 조언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소크라테스형이 인문학으로서 가장 적당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이 든다.소크라테스형은 진리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비판의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의 본류(本流)라고 여긴다.그런데 실상은 저널리스트형을 닮은 사변가형이 많다는 점이다.그것은 최신 유행을 학문으로 오도하고 있는 대학 강단의 저급하고 속성주의의 단면이 아닐까 한다.미국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소크라테스형이 많았지만 현재는 전문적이며 사변적이고 반(反)소크라테스적인 것이 우세하다고 한다.특히 자신의 전문 영역에 함몰된 전문가주의나 신비평과 같은 현미경주의적인 인문학은 현시대의 가치관과 신념,윤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본령(本領)에 미치지 못하는 체제 순응적인 학문이라는 점을 힘주어 비판하고 있다.
한 권의 책,한 권의 잡지,한 편의 칼럼을 읽되 겉에 드러난 의미와 가치보다는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속뜻을 빨리 찾아 부조리,불균형,모순점 등을 비평하고 통제하고 감시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진실된 역사 만들기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그러한 사회의 부조리,위악성 등을 건전하게 비판하고 깨우친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방관자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쉽고 편안 길을 추종하려는 자세에서 나와 사회,국가를 위해 좀 더 고민하고 사유하려는 사고를 유지하는 것이 가깝게는 다수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멀게는 인류의 삶까지 개선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