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십자가 2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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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대장경의 판각에 즈음하여 "천 년의 지혜를 천 년 뒤의 후학들에게 남겨 주기 위한 일"이라고 설파한다.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고려는 불국토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데 대장경 및 갑옷,돌 등에서 십자가 문양이 나왔다는 것은 논쟁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특히 종교계의 지도자 및 교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경교에 관한 비석이 증거물로 남아 있다.선덕왕 2년 781년에 세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바로 그것이다.

 

 대진국 즉 로마시대에 네스토리우스는 신모설로 불리던 마리아를 반대하면서 이집트로 망명하게 되고 그의 종교적 이념과 사상을 이은 후계자들이 대소국(이란)으로 옮겨 가지만 당시 이란은 이슬람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기에 네스토리우스교와 마찰과 갈등을 빚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후 그들은 중앙아시아,인도,당나라로 전전하면서 그들의 종교적 이념과 사상을 전파하게 되었다.다행스럽게 당나라 태종은 타국의 종교와 문화를 포용하는 정책을 썼고 당나라에 유학을 갔던 신라인들에게 경교를 전파했을 것으로 보여진다.고구려,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네스토리우스교는 경교로 불리워지고 해인사 대장경 및 몽고군의 갑옷,통일신라시대의 돌 조각품에 십자가 문양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초조대장경이 불태워지고 남해의 정안 처사 및 일연 스님을 중심으로 재조대장경 판각사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된다.한편 지밀 승경은 각수장이 김승을 만나게 되면서 초조대장경이 소실되던 때를 지밀 승경에게 담담하게 들려 준다.최이 집정관을 중심으로 하는 무인들은 개경에서 강도로 천도를 단행하면서 타락한 불교계와 의기투합을 보이면서 팔만대장경 판각사업을 진행해 가는데 이는 당시 고려가 무신이 득세했기 때문이며 팔만대장경 사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디까지나 정권 연장을 획책하기 위한 술수가 아니었을까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사항으로서 여몽연합군과 삼별초와의 항쟁,여몽연합군의 1,2차에 걸친 일본 정벌 등을 머리 속에 그릴 수가 있었다.고려시대 몽고에 의해 산하가 쑥대밭이 되고 황권은 허수아비인데다 무신과 불교 승려들이 타락하여 이권과 권력을 쥐락펴락하니 결국 못 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게다가 몽고는 고려왕조가 항복하자 부마국으로 대우를 하고 매국노 홍다구를 이용하여 군함을 건조하게 한 후 여몽연합국으로 무장하여 일본을 정벌하지만 결국 태풍과 군의 사기저하로 퇴각하고 만다.고려는 쿠빌라이의 치밀한 전략에 샌드위치가 되고 만다.국가의 힘은 강력한 지도력과 민.관의 합심단결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신의 아들이며 부활 승천했다는 세존의 상징 예수와 철저한 자기 수행을 통해 해탈의 길을 얻는 불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종교 이데올로기는 타력 구원과 자력 구원의 문제로 볼 수가 있다.지밀 승경은 가온과 탁연이 정리한 복음서라면 대장경 목록에 넣어 볼 수 있다고 김승에게 제안한다.김승이 지밀 승경에서 보여 준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은 대진국의 총독 미란타와 천축국 학승 나가세나가 벌인 논변을 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 경전은 문명 교류의 흔적을 담고 있소이다.천축국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노장 사상과 만나 통섭하여 수많은 경전이 쏟아졌지요." -P233

 

 이 글을 읽으면서 종교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다가왔다.기본 교리와 이념이라는 경전을 중심으로 약간의 이견을 보이는 교도가 새로운 갈래를 형성해 나가고,다시 새로운 종교와 문화를 포용하는 이들과 접선하여 융합해 나간다는 사실이다.불교가 자력 구원이라면 기독교는 타력 구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1232년 몽고군에 의해 초조대장경이 소실되고 재조대장경이 만들어졌다.고려대장경,해인사대장경 등으로 불리는 대장경은 "천 년의 지혜를 천 년 뒤에 후학들에게 남겨 주기 위한 일"이라고 의천 스님은 말했다.또한 국난이 있을 때마다 부처의 가르침과 기원으로 극복하려 했던 고려시대의 대장경 속에는 판각수들의 노고가 담겨져 있고,붓다의 십자가 문양과 발견을 통해 고구려,통일신라,고려에 이르기까지 대외관계가 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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