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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예찬 -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문자의 기원에 대해 호기심이 잔뜩 일어난 적이 있었다.수메르,이집트,히타이트,중국의 갑골문자 등을 문자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이들 문자가 대부분 모양과 형상을 본뜬 상형문자이라는 것이 특징이다.그런데 대학시절 외국어를 배우면서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기도 하고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기기도 하는 시행착오를 거쳤다.흥미롭고 궁금증이 일어나는 점은 처음에 누가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겼을까 이다.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고유명사,지명,인명 등과 같이 고정불변의 단어들은 그렇다치고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은 어떻게 뜻과 용례를 찾아냈을까 등에 대한 궁금증이다.아마 주로 조선시대 중국 및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사람들이 깨알과 같이 해당 단어와 한국어를 대조해 나가는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또한 2차 세계대전 후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해 적성국가였던 러시아와 같은 나라의 문학은 1차 번역작품을 토대로 우리말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아울러 최초로 외국어를 접하면서 수고스럽게도 우리말로 잘 정리하면서 외국어와 우리말을 비교,대조해 나가려 했던 분들이 새삼스레 문화의 외교관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렇게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옮기는 사람의 지극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단순하게 직역을 하는 수준을 떠나 해당 언어가 쓰여졌던 시대의 역사,사회,문화,작가의 생각과 감정의 틀을 이잡듯이 세세하게 해체하고 조립해 나가야만 비로소 번역물을 읽는 독자들에게 감흥과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그래서 외국어로 된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려면 해당 국가에 몇 년 이상 살아봐야 될 것이다.학문적인 깊이도 있어야 할 것이고 해당 국가의 역사,문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해야 번역이 번역답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또한 언어라는 것이 시대와 사회의 반영물이다.예를 들면 19세기에 쓰여진 작품이라면 19세기 해당국가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작가의 감수성과 이성,논리까지 머리 속에 있어야 할 것이다.좋은 번역물은 번역을 한 번역가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빛내 줄 명작이 될 수도 있으니 번역가는 번역을 위한 것이 아닌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좋은 번역이란 과연 무엇일까.
번역이란 창문을 열어 비치을 들이는 일이요,껍질을 깨 알맹이를 먹이는 일이며,휘장을 거두어 지성소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일이요,우물의 덮개를 거두어 물을 깉게 해주는 일이로다. -P61
번역이란 다양한 세계와 문화로의 포용을 위한 여행이라고 한다.모두에서도 얘기했듯 좋은 번역을 낳기 위해서는 기존 좋은 번역물을 원문과 대조해 보는 작업과정도 중요하고,해당 작품을 쓴 작가를 만나 작품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작가의 인생역정 등에 대해 대화와 소통을 해 보는 것도 무척 소중한 기회일 것이다.이미 해당 작가가 작고하여 세상에 없다고 한다면 작가에 대해 기록해 놓은 자료집이나 기록물 등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작가와의 마음의 교류를 해야 하고,해당 작가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을 찾아 해당 작가에 대한 예비지식을 배양해야 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추리,스릴러,로맨스 등의 장르소설의 번역물을 자주 접하고 있다.번역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경험의 발로가 저절로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덜 채워지고 부정교한 번역물도 심심치 않게 발견하고 있다.원작자의 의도를 중시하여 미세하고 사소한 원문상의 차이까지 존중하는 등 번역어로 최대한 정확하게 되살리려 힘쓰는가 하면,번역가에 따라서는 조옮김한 음악과 같은 새 작품의 매력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문학을 번역하는 번역가는 오리지널리스트함과 액티비스트함을 두루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즉 번역은 언어와 언어 간 의미의 이동이 아니라 두 언어가 주고받는 문답이라는 것이다.
국내 모유명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막장에서 사용하는 연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외국어를 우리말답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동의어 사전,백과사전,어원까지 미칠 정도로 뒤져야 하는게 기본 자세이며 도구로서 필수품인 것이다.해당 작품의 언어의 정서적 효과,언어를 둘러싼 사회 분위기,언어에 영향을 주는 사회 환경과 풍조,언어가 불러일으키는 느낌 등에 대한 비평적 시기견을 연마하고 확장해 나가려는 적극적이고 액티비스트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이디스 그로스먼 번역가는 미국인으로서 주로 남미 작품에 대해 번역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또한 자국의 언어인 영어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타국의 작품이 영어로 옮겨진 번역물이 많지 않다고 꼬집기도 한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뉴스피크(newspeak)의 창조와 이것으로 의도되는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빈곤한 언어와 축소된 의사소통에 처해지는 자들이 사고 과정에서 의식적인 왜곡을 하게 되는 암울한 미래를 제시했는데,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순수한 종말론적 허구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역사를 가진 이 세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압제적 경향을 반영한 것입니다.이 예속적 경향을 무시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언제 어느 곳에 나타나든 그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P65
문학과 번역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 아닌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와 같다고 하는 이디스 그로스먼저자의 말처럼 문학 작품을 재창조한다는 의미에서 번역가의 수고스러움과 온축된 번역경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그럴려면 우리말에 대한 해박한 언어지식을 잘 갖추고 두루 잘 적용해 나가는 지식과 능력을 겸비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번역물은 이제 단순하게 타국어를 자국어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다.보다 독자들에게 생생한 의미 부여와 공감도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작가의 과정이라고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