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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 슬하에 있을 때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 지루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어린 시절엔 조부모님을 비롯하여 대가족이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 자랐다.옹색하고 비좁았던 초가의 두 칸 방에서는 가장 어른인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온식구들이 두 개의 밥상을 차리고 낮에는 일을 나가는 한편 밤이 되면 구들장에 피어 오른 군불이 윗방까지 따뜻하게 대펴 주면서 겨울날 추위에 내려 갔던 등짝의 기온들이 얼음 녹듯 스르르 녹아 가면서 단잠도 꿀맛 같던 시절,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아무 걱정,근심없던 행복하기만 했던 날들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곤 한다.
스무 살이 되어 할아버지의 작고하시고 서른 두 살 때 할머니마저 작고하시면서 포근하고 풍성하던 집안이 썰물과 같이 밀려 나가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특히 할아버지의 작고는 내 생애 커다란 삶의 충격이었다.임종을 지켜 보았던 터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엇이고 죽음을 맞이한 순간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도 평온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허무하고 덧없다라는 것을 실감했다.할아버지의 작고가 내게는 삶의 상실이고 비애였다.그 시절 대학 문턱을 밟았을 무렵이라 삼우제를 지내고 바로 상경하여 대학생활에 충실하려고 마음을 잡았지만 상실감이 아물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그것은 할아버지의 자애로움의 삶의 과정에서 보여준 성실과 근면,그리고 '언중유골'과 같은 인생의 가르침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유를 그대로 보여 주었던 내 앞의 큰 나무였기 때문이다.
뭉게구름과 같이 더디게 흘러 가던 이십대를 넘어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이제는 태풍의 속도 만큼 시간은 잘도 흘러만 간다.내 나이,내 젊음을 챙길 틈도 없을 만큼 일에 채이고 생계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사십을 넘고 이제는 오십에 들어 서게 되었다.삶의 길이는 개인마다 다르고 느끼는 바도 다르겠지만 이즈음 되니 몸과 마음에 여울이 지게 되었다.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쉼없이 부딪히면서 경험했던 날들이 내게는 '시행착오'의 값진 과정이 되었다.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소중한 바로미터가 되어 준 셈이고 내 뒤를 이어가는 자식들에게 쓰고 달콤한 잔소리가 되어 줄 것이다.내가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정신적 가르침이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인간에게는 다양한 삶의 무늬들이 아로 새겨진다.부모에게 물려 받은 DNA와 같은 기질적인 측면부터 학습과 경험에 의한 성품과 사회성으로부터 다양한 감정과 이성이 쌓여 간다.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현재의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각박하게 살아 가고 있다.지금 느끼는 삶의 질이 낮아서 우울하고 슬프다고 말을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현재의 자신의 삶을 타인과 비교하여 나타나는 증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나는 살아 가면서 때론 남들과 비교하여 내 자신을 타인보다 우위에 놓이기를 바라면서 치열한 경쟁을 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에는 무모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우선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잘잘못을 가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되든 안되는 남보다 잘되면 된다 라는 강박관념이 컸던 것이 무모한 경쟁의식이 생기고 목표로 삼았던 결과는 낮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내가 내 자신을 가장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수준을 똑바로 알고 겸허하게 일과 삶을 다져 나갔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자성을 많이 한다.
빠르게 흘러 가는 시간 속에서 이젠 건강과 노후 문제가 은근 걱정이 된다.게다가 아이들 교육비마저 태산과 같아 목표와 계획을 잘 세워 아이들 교육지원에 소홀함이 없이 사회인으로서의 예비책을 잘 세워 나가기를 바라고,우리 부부는 노후에 발생할 경제적,건강적인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소식(少食)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의 무늬를 그려 가려고 한다.유한한 인간의 삶 속에서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과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멋진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또한 멋진 삶,후회없는 삶이 되려면 '수행'한다는 기분으로 나날을 맞이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견지하려고 한다.우리 윗세대와 달리 내 자식들 세대에게는 삶의 이정표를 아이의 가능성과 능력에 맞춰 지원을 하면서 왠만하면 내 힘으로 남은 삶을 꾸려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늙어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자식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짐이 된다면 살아 있는 의미와 가치는 떨어질 뿐이다.특히 자식이 태어나서 사회인이 될 때까지 일일이 챙기고 간섭하고 보호하는 부모는 부모도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자식에게도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이 자립심과 경쟁력을 키워 주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이 어느 정도 사회성을 갖추게 되면 부모와 자식간에 일정한 선을 긋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견해이다.
이 글을 쓰신 법륜스님의 말씀은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사서 고생하는 삶의 방식을 떠나 내가 우주의 주인이고 독립체로 거듭나기 위해 예전과 같은 부모의 역할을 벗어나 내 삶의 방향타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즐겁고 유익하고 빛나는 인생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언젠가는 부부,친구,지인 모두가 세상에서 멸하는 날이 올 것이다.오래도록 사랑을 나누던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상실감과 비애는 클 것이다.이에 법륜스님은 이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상대에 대한 참회를 말씀하고 있다.
'나하고 산다고 당신 정말 고생 많이 했다.정말 미안하다.'와 '그래도 3년간 살아줘서 내 삶에 좋은 경험이 됐다.'이다.
내 곁에 영원히 있어 줄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가까운 이를 보내는 것을 두고 언젠까지 상처와 비애를 안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남아 있는 자로서 감사와 참회로 사랑했던 이를 보내고 남은 삶을 지금보다 더욱 멋지고 빛나도록 추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또한 내가 실천하고 있는 삶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되,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이 없다"라는 <금강경>의 구절은 이해관계에 찌든 속세인들에게 값진 교훈을 안겨 준다.남에게 주고 베푸는 행위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인과 덕을 쌓는 길이다.뭔가를 바라고 주었다고 생각하면 괴로움과 원망의 염(念)이 몸과 마음을 얼마나 괴롭힐 것인가.이와 견주어 내가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한 것에 대한 보답과 답례를 갈구하기 마련인데 만일 자식이 살아가는 형편이 좋지 않아 보답,답례를 해 주지 못한다면 부모는 자식을 자식답게 생각하지 않고 불효자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응어리와 한(恨)을 안을 것인가.
인간에게는 무수한 욕망과 탐욕이 자리잡고 있다.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그 욕망과 탐욕이 이루어진다면 괜찮겠지만 불가능한 인생의 목표,경쟁의식으로 덧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현재 삶이 힘들더라도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자성하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더욱 빛나고 값진 삶의 가치가 아닐까 한다.짧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보다 유익하고 멋지고 빛나는 삶이 될 것인가를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법륜스님의 통찰력 있는 구절들이 생각의 전환을 해 주고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