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발랄 맛있는 남미 - 상
이애리 지음 / 이서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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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입대를 하기까지는 5개월 정도의 여분의 시간이 있어 뙤약볕에서 배수관 옮기기 작업과 시립 도서관 입구 잔디밭 만들기 등 아르바이트를 하여 약간의 용돈이 생기게 되었다.당시(1980년대 중반) 1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여 30만원 정도를 벌게 되었는데 이것으로는 대만 어학연수를 갈 상황이 되지 않아 부모님께 일부를 드리고 나머지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겨 내심 좋은 기분이었다.그런데 마음 한켠에선 대만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취업에도 용이할 것 같아 아버지께 졸라 댔더니 하시는 말씀이 "네가 군대 간 사이 매달 3만원 가량씩 저축해서 제대하면 대만 어학연수 보내주마"라고 하여 기대와 설레임으로 부풀었다.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대를 하고 다시 복학하기까지 4개월 정도의 여분이 시간이 생겨 대만 어학연수 갈 돈을 모으셨냐고 여쭤보니 배시시 웃으시면서 그냥 "담에 보내줄게"라고 하시는 것이다.잊지 않고 기대를 모았던 대만 어학연수는 일장춘몽의 물거품으로 변하고 마음을 고쳐 먹고 복학과 동시에 취업 준비 모드로 들어 가게 되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대학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을 했지만 제대로 된 외국어 구사는 하나도 없는 가운데 달랑 졸업장 하나로 과연 내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살릴 수가 있을까 라고 고민하던 중 전공인 중국어를 제쳐 놓고 대학시절 한국에 왔던 일본인 유학생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일본에 초청 좀 해달라고 의뢰를 하면서 대만은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일본에 갈 부푼 꿈으로 가득차면서 초청장,여권,비자 등을 준비하여 드디어 처녀 비행기를 타고 일본땅을 밟게 되었다.일본인 친구가 공항에 마중 나와 나를 맞이해 주었는데,완벽하지 않은 일본어에 3개월간 체류할 곳과 체류목적 등을 세관원이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 둘러 댔지만 수상타 싶어서인지 세관원 사무실에 앉혀 놓고 내보내 주지를 않는다.그런 와중에 일본인 친구의 얼굴이 사무실 창문 밖으로 빤히 보여 내심 '원군이 찾아 왔구나'라고 안도하면서 세관원에게 일본인 친구를 동석해 줄 것을 요구했다.내 말이 진실이었는지 친구의 얼굴을 보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인 친구의 정성스런 설명에 의해 나는 무더운 여름날 일본땅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일본에 간 목적은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약간의 여행비를 벌어 일본의 각지를 자유여행식으로 다니는 것이었다.그러한 꿈이 친구의 도움과 주선으로 실현이 되었다.헤이안시대의 도읍지였던 교토의 모호텔에서 그릇닦기,간단한 튀김요리와 맥주 및 안주서빙(호텔 옥상에 마련한 비어가든)을 하게 되었다.성실하고 근면한 일본인 특유의 성격,기질이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물씬 풍겨 나오면서 일본인의 단면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함께 일하던 일본인 동료들과의 어울림,소통으로 조금씩 일본어 실력이 향상되고 아르바이트 1달이 지나니 호텔 총무과에서 급료 봉투를 내게 건네 준다.매일 거의 10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일했던 결과로 20만엔 가까이 받을 수 있어 이를 일본 모은행에 예치시켜 놓았다.두 달째도 거의 20만엔 수준의 급료를 받고 3개월 째에는 13일 정도만 일을 했다.비자 만료기간 10일 정도를 남겨 놓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두루 다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한국과 달리 교통비,식비,숙박비가 턱없이 비싼 편이다.당시에는 엔화가치가 높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교하니 비싸기 짝이 없었다.그래서 꼭 가고 싶은 곳 예를 들면 오사카의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재래시장,일본 3대 절경 중의 하나인 아마노하시다테,그리고 신칸센을 타고 도쿄를 구경하는 것이었다.물론 도쿄에도 일본인 친구가 있어 경비를 절약할 수가 있어 다행이었고 이곳 저곳을 안내받을 수가 있어 일석이조의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 교토에서의 아르바이트는 호텔 손님들이 먹고 난 뒤의 그릇들을 쉼없이 씻고 닦는 것의 연속이었고,오후에는 튀김 재료를 뜨거운 기름에 넣어 튀김을 손수 만드는 것이었다.튀김 재료가 프랜차이즈식으로 만들어져 나오기에 적당한 온도의 기름에 튀겨 올리면 되는 것이다.그런데 철로 되고 기름을 부을 수 있도록 사각형 식용유통의 상단 모서리를 양손으로 잘못 잡는 바람에 매끌매끌하면서 날카로운 단면에 양손 검지,중지가 잘리면서 출혈이 발생하게 되었다.곁에 있던 일본인 동료가 재빨리 응급처치를 해주고 총무과에 알려 산재처리가 가능하도록 도와 주었다.그 덕분에 1주일 정도는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일본인이 아니기에 의료보험증이 없으면 치료비용이 많이 나올까봐 호텔에서는 고육책으로 나를 일본인 가명을 만들어 주면서 치료를 받게 해주었다.친절한 병원 의사의 진료와 치료 덕분에 예리한 부분에 베였던 손가락이 아물면서 다시 호텔 아르바이트(튀김은 하지 않게 되었다)로 복귀하게 되었다.교토의 일본인 친구는 참으로 고맙기만 한 존재이다.혼자서 이곳 저곳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는 자비를 들여 처가가 있는 시골 및 관광명소도 손수 안내해 주었다.3개월이라는 일본 체험은 비록 단편적이지만 일본의 역사,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교토를 중심으로 나만의 일본여행을 할 수가 있어 멋지고 향기나는 시간이 되었다.지금은 연락이 두절되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당시 일본인 친구의 고마움과 감사함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어학연수=영어'가 아니라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으면서 자신이 일하면 번 돈 500만원을 가지고 278일간 남미 6개국을 무식하게 여행했다는 이애리작가의 남미 여행에세이를 읽으면서 불현듯 청춘시절 내가 무모하게 동경했던 일본땅에서의 일본 체험이 교차되었다.남미는 멕시코의 마야문명과 중남미의 아즈텍문명 그리고 안데스산맥 부근의 잉카문명이 살아 있는 곳이다.그래서 이 도서에 묘한 끌림이 있어 읽게 되었는데 남미 여행지에서의 문명과 유적,역사,해당국의 국민성 등 보다는 이애리작가의 좌충우돌식의 체험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색다른 여행기를 맛보게 되었다.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 모두 잉카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15세기 이후 스페인의 침입과 제국주의로 인해 현재는 인디언 고유의 언어와 문명은 사라지고 초기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이 남겨 놓은 제국주의 유산이 잔존해 있다.이 세 나라는 아직 개발도상국에 있다 보니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고,이애리작가가 다녀 간 곳들은 주로 원주민격인 인디언들이 사는 마을과 학교,그리고 최후의 여정지 마추픽추이다.생활수준이 낮고 교육열이 낮다 보니 삶의 질은 낮기만 한 곳들이다.그렇지만 이애리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헛헛함을 달래기도 하고,영어 선생님이 되어 그곳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태권도 시범까지 보여 주었던 이애리작가는 물질문명이 선진화된 국가들이 아닌 물질문명 수준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인간의 순수한 정이 살아 있는 곳들을 몸소 체험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젊은 시절의 무형자산이 아닐까 한다.남미가 아직은 치안수준이 떨어지기에 여성 혼자 다니기에는 두려움이 있는 곳,그리고 마추픽추 여정길에서 만남 '베드버그' 벌레는 몸에 향수가 짙게 배인 사람한테만 달겨 든다는 것이 인상적인 부분이다.'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엉뚱발랄 맛있는 남미를 읽고 난 뒤의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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