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 사는 직업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다양한 직업들도 한계적인 인간의 수명과 같이 또는 자연의 섭리와 함께 생사를 순환하기도 한다.한국의 경우 조선팔천(八賤)이라는 직업( 노비, 광대, 기생, 백정,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이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말았다.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죄수라고 생각하여 처형을 해야 하는 경우 당연 사행을 집행하는 사형집행인이 있었던 것이다.유럽의 경우 사행집행인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행집행인은 생계를 위해 죄수에게 온갖 고문을 자행하고 목숨줄을 끊어 놓아야 비로소 관할 행정기관으로부터 수고비를 받았던 모양이다.그리고 사행집행인의 경우에는 세습적으로 그 직업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올리퍼 푀치가 쓴 <사행집행인의 딸>을 읽어 가다 보니 혐의자 내지 용의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방증,탐문,증거자료 등에 의한 현대적인 수사진행보다는 미신과 인습,정령과 같은 의식이 팽배하면서 얼토당토 않은 사람을 무고하게 잡아 들여 가혹한 고문과 자백을 받아 내려 했다.일종의 몰이식으로 무죄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우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니 죄없는 자가 고문을 받고 거짓자백을 해야 하고 사형집행의 방법도 대부분 화형(火刑)이었다.인간이 어차피 한 번 죽는데 이렇게 죽어 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고 비참하고 가혹하기만 하다.그래서 시대,사회의 흐름과 구조,제도는 인간에게 육체적,정신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중세 독일의 한 마을(숀가우 지방)에서 발생한 한 소년의 의문사가 악마의 상징이었던 산파(마르타 슈테흘린)에 의한 짓으로 몰아 가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죽은 소년의 몸에서 연금술 기호와 십자가 표시가 새겨져 있어 시의회에선 산파를 특히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산파인 마르타 슈테흘린은 수많은 태아들이 세상에 나올 때 인정과 자애로 도움을 주었던 인물인데 이 사건이 발생하기 70여 년 전에도 유사한 일로 인해 산파들이 화형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던 비극이 있어 이번 물가에서 소년의 죽음에는 마녀의 상징인 요녀 산파를 잡아 들이기로 시의회에서 작정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행집행인 야콥 퀴슬과 그의 딸 막달레나 퀴슬,의사의 아들인 지몬 프론비저 그리고 짐마차꾼,여관,식품점,시의원,참관인,어린이들,군인들이 당시 숀가우 지방과 이웃 아우크스부르크 지방과의 수로교역까지도 잘 들려 주고 있다.특히 야콥 퀴슬 사형집행인의 가족은 실제 존재했다고 하니 중세 유럽의 사형제도에 대해 기회가 닿으면 찾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이번 숀가우 지방에서의 소년의 죽음과 연관하여 1659년 4월24일부터 동년 5월1일까지 1주일 간의 숨막히는 과정이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산파는 과연 관습에 따라 가혹한 고문,강요된 자백을 통해 화형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일까.

사행집행인 야콥 퀴슬은 산파를 고문하고 자백을 얻어내야 수고비를 받고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 그는 산파를 감옥에 넣고 고문을 하되 고통이 덜 한 방법을 쓰게 된다.일종의 신경이완제와 같은 약초를 쓰는 것이다.반면 시의회의 서기 요한 레흐너는 집요하게 산파의 죄를 자백받고 화형식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재촉을 거듭하게 되고,사행집행인의 딸 막달레나와 의사의 아들 지몬은 청춘 남녀로서 애정이 조금씩 싹터 가는 것이 매우 흥미롭기만 했다.특이한 것은 사행집행인 야콥 퀴슬은 의식이 깨어 있던 인물로 다양한 도서의 소유자이면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 가려 했던 것으로 보여지며 그의 딸 막달레나는 지체 높은 신분의 가문은 아니지만 미모에 영민하기만 했으니 의사 아들 지몬이 그녀를 좋아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산파가 마녀로 몰리면서 숀가우 지방에서는 나병 요양소 건립이 진행중이었는데 방화 사건으로 인해 건물이 소실되고 건물 밑에 둔 보물이 없어지면서 산파의 화형은 뒤로 미뤄지는 듯하게 스토리가 전개되어 간다.아이들 세 명이 의문사 당하고 두 명이 행방불명 되면서 야콥 퀴슬과 지몬은 난쟁이 동굴로 들어가 실종된 아이들 찾는데 주력한다.반면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는 악마들이 추격하면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산파였던 마르타 슈테흘린은 야콥 퀴슬에 의해 반죽음의 상태에서 기사회생하게 되고,막달레나와 지몬은 사랑이 점점 깊어만 간다.아이들이 죽고 실종되고 요양소 건물이 방화되는 사건의 배후에는 악마와 같은 군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었다.

17세기 후반 독일의 숀가우와 아우크스부르크 지방이 의문의 소년 살인사건과 배후를 파헤치는 사형집행인의 분투가 스릴 넘치고,현장감 있게 잘 그려져 있다.작가의 탄탄한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주도면밀하게 살려져 있고 산파와 사형집행인의 관계를 보면 '정의'는 살아 있다라는 인식과 막달레나와 지몬의 로맨스적인 요소는 이 글을 읽는 데에 달콤한 소스와 같은 역할을 해 주기에 충분했다.후반부로 들어 갈수록 추격하고 쫓기는 스릴감을 더 해 주었고 진실은 사실 위에 있다는 점이 주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