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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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관련 도서를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이번 <1913년 세기의 여름>과 같이 특정한 해를 중점적으로 다룬 도서는 이번이 처음일 뿐만 아니라 신선한 충격과 흥미,학습이라는 세 마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의 일이지만 현대화 즉 모더니즘이 전방위적으로 만개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모습과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당대의 정치,문학,예술,문화,사진,연애담이 관련된 인물을을 내세워 세밀하게 전해 주고 있다.그것도 모자라 매월(1월~12월) 발생했던 사건과 인물들의 동태,향후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기사에 이르기까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이유는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작가와 예술가들의 삶과 정서가 안정되어 있지 않고 불안한 내면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어찌할 수 없는 개인의 기질과 인간관계 등이 어느 사회,어느 개인에게나 존재하기 마련인데 1913년대를 살았던 인물,그들이 남긴 업적이 매우 크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의미 있는 한 시기의 에피소드가 아닐 수가 없다.

 

 1913년은 모더니즘이 만개하던 해이고 다음 해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제국주의의 맹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패권다툼을 놓고 열강들은 짝짓기를 교묘하게 도모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그 시기는 발칸전쟁이 발발하고 정전수습이 이루어졌지만 2차 발칸전쟁이 재발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견제키 위해 러시아를 주측으로 세르비아-불가리아-그리스-몬테네그로가 터키제국과 맞붙은 전쟁).후일 발칸전쟁은 1차 세계대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20세기 초는 빈은 중심으로 뮌헨,베를린,파리가 유럽의 핵심도시였는데,이 글에서는 빈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각계의 인물들의 사연과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1913년 당시 인생의 전성기에 있었던 인물도 있었고 1913년에 막 태어난 인물도 있었다.별 볼일 없는 엑스트라와 같았던 인물들 이를테면 민족문제 연구에 몰입하던 스탈린,남성쉼터에서 수채화를 그리던 히틀러,자동차의 커브길 승차감을 검사하던 티토는 20세기 폭군으로 인식되고 2차 세계대전을 총지휘했던 핵심인물이기도 했다.이 도서에서는 3인의 행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스탈린이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고 히틀러는 수채화로 생계를 이어가던 근검절약 타입이었다.에피소드에서 예민한 성격의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보면 소름이 끼치고 역감정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여진다.

 

 1913년에 활약했던 문학가,예술가,철학가 등을 보면 순탄하게 살아 가는 인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정서불안과 억눌림,우울감,광기,분노,예측불가한 상황이 군데 군데 자리잡고 있다.결혼을 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 나가는 프란츠 카프카의 불안정한 삶과 기질,<마의 산>을 쓴 토마스 만의 모호한 성정체성,'친부살해 사건 이론'을 놓고 프로이트와 칼 융의 이론적 대립,릴케와 로댕과의 삐걱거리게 되는 사연을 비롯하여 부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인슈타인,헤세,슈니츨러의 얘기를 들려 주고 있다.

 

 그렇다고 꼭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후설의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이 1913년에 출간된다.후설의 위대한 철학 패러다임의 전환은 실증주의적 실재에서 의식적인 실제로 전환했다.1913년 도처에서 내면세계가 그림으로,책으로,집으로,광기로 실제가 된 해였다.또한 제임스 조이스는 베를린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 영국으로부터 작품의뢰가 들어 오는데 좋은 조건이다.그는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기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1913년 폭발력을 흡수했던 3대작이 탄생했다.그것은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율리시스는 음란물로 취급받아 소송까지 가야 했던 작품이다.

 

 나아가 인상적인 부분으로서 1913년에는 FED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되면서 주정부에서 돈을 자체적으로 찍지를 못하게 되었고 소득세가 도입된 해였다.루돌프 마르틴의 <1913년 북독일의 백만장자 귀족들>이 출간되었는데 재산이 100만 마르크가 넘는 귀족 917명의 명단 그리곡 부유층이 슐레지엔에 살고 순위 맨 위는 오펠른의 노이데크성에 사는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후작 가문이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그외 독일제국의 영토가 된 엘자스-로트링겐의 위수 도시 차베른에서 프랑스인을 "형편없다","프랑스 국기에 똥을 싸도 좋다"고 선언한 연대장 귄터 폰 포르스트너 남작에 대해 격한 항의가 있었는데 독일 고등군법에서는 로프스트너의 행동이 "오상(誤想)이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이를 두고 독일 자유주의적인 차이퉁은 "시민 계급이 패배했다.이것이 바로 차베른 재판의 본질적이고 가시적인 징후다(...)군 권력이 시민에 대한 무제한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음을 언명했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불길한 예언과 불안이 담긴 메시지 이를테면 단눈치오가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선물하면서 날짜에 예방 차원에서 '1912+1'이라고 쓰고,쇤베르크도 1913년이라는 불길한 숫자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그가 '12음 음악'을 고안한 것도 12 다음 숫자에 대한 공포에서 탄생했을 정도로 당시의 석학들도 샤먼과 토템이라는 정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진다.1913년은 불길한 징조를 암시하는 문구가 있지만 다사다난한 해였다는 평범한 이야기가 맞을 듯하다.그 해에는 알베르 카뮈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며 스탈린과 절친하게 지냈던 트로이츠를 살해한 라몬데르카데즈가 탄생했던 해이기도 하다.다양한 분야,다양한 인물,다양한 행사와 작품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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