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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바다여 1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0
아이리스 머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가장으로서 생계와 가족의 안녕,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가족들 앞에서 마음 편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후회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아직은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한 산과 물이 내 앞에 도도하게 서 있지만 사는 것 자체가 역경의 연속이도 남들도 모두 그렇게 체념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온갖 장애물들을 겁내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어떠한 회고록을 쓸 수가 있을까.과연 가감없이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쓰되 내가 남긴 회고록이 남아 있는 자식들과 타인들에게 얼마나 읽혀질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쭈뼛거린다.지금까지 아름다운 낭만과 행복의 성(城)을 견고하게 쌓기 위해 못다한 정열을 조금씩 불살라 가리라.
사람은 직업병이라는 것이 있다.인간에게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본능과 본성이 있다면 사회생활 가운데 경험하고 체득한 것이 자신의 초상화가 될 것이고 타인의 시선으로는 품성,인격,인품 등으로 구분되어지리라 생각한다.셀 수 없이 수많은 직업 속에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져 하나의 커다란 인격형성을 이루리라 생각한다.물론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선천적인 기질과 체질도 어느 정도 개성과 인격을 형성해 나가겠지만 울퉁불퉁했던 외줄기 사회생활은 한 인간의 그릇의 크기와 정념이라는 감정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일을 통해 생계를 꾸리고 사람을 만나 대화와 소통,수다라는 언어행위와 성욕,질투,분노 등의 감정의 고리를 몸과 마음 속에 저장해 나간다.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지성인으로서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의 수상작인 '바다여,바다여(총2권)'는 연극의 삶을 살아 온 찰스 노인의 회고록과 일기를 섞어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 주고 있다.어느 나라든 나이 60이 넘으면 현역에서 물려나 퇴역의 신세를 져야 하는 몸이다.연극계라는 분야가 딱히 은퇴라는 제도가 있을까마는 찰스 노인은 북적북적거리는 대도회지 런던을 떠나 한적한 바다가 넓게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의 외딴 곳에 둥지를 틀고 지난 온 시절을 회고한다.찰스가 말했듯 그가 현역이었을 당시는 연극계의 대부인냥 언론 문화계는 그에 관한 특종(스쿠프)을 잡으려 문화부 기자들은 혈안이 되었던 것 같다.그를 두고 연극계의 폭군이요,야만이요,권력에 미친 괴물이라는 식으로 지상(紙上)을 점철하고 있다.또한 찰스는 연극계에서는 인간 영광의 덧없음을 배우게 되는 곳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그런데 찰스는 인생을 제법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실 부인 하나 없는 외톨이 남자이다.청,중,장년시절 그와 짧든 길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그리워하고 내치기도 하고 질투도 했던 여성들이 꽤 많다.주인공 찰스와 사랑을 나눴던 여성들이 얼추 여섯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왜 그는 신체불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못하고 혼자 남게 되었을까.일반인들의 시선과 생각으로는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을 법한데 그의 사연인즉 여성관계가 복잡했지만 모든 여성을 내치고 오로지 한 여성을 머리 속에 품고 그리워하면서 꼭 자신과 함께 여생을 보내리라 애를 태우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하틀리 부인이다.찰스는 하틀리를 사랑하고 하틀리도 그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하틀리는 이미 유부녀일 뿐인데,성질이 광폭하고 무뚝뚝한 사나이 벤과 함께 살고 있다.게다가 그녀는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배에서 낳지 않은 남아를 입양시켜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벤과 하틀리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게다가 양아들 타이투스는 양아버지 벤으로부터 이렇다 할 사랑과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벤과 하틀리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면서 정신분열증마저 일으키게 된다.
찰스는 뭇 여성들과 교제를 하고 사랑까지 나눈 사이지만 정열적인 로맨스보다는 은밀하고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찰스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고 사랑을 가르쳐 준 클레멘트,그리고 지성적이고 질투와 시기가 강한 로시나와 리지 그리고 사촌 동생인 제임스는 직업군인으로서 티베트로 출향하는데 그곳에서 얻은 정신적 체험과 신비스러운 동양문화가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배우이면서 연출가였던 찰스가 연극을 버리고 고독을 되씹기 위해 안착하게 된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그가 내내 그리워하고 연모해 마지 않던 하틀리를 만나게 되면서 이 글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과연 찰스와 하틀리 그리고 주변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