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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서울 뿐만 아니라 부산,대구,인천 등 광역도시 어디를 가든 아케이드 공간이 점증되어 가고 있다.열주(列柱)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 반원형의 천장 등을 연속적으로 가설한 구조물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 공간을 아케이드라고 부른다.역사상 대표적인 아케이드 건축물은 콜로세움과 폼페이를 들 수가 있다.아케이드의 역사도 역사이지만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한국의 도시들을 명품화 한다는 명목하에 기존의 재래식 건물,재래식 시장 등을 일거에 헐어 내고 그 자리에 최신식 아케이드를 조성함으로써 쾌청하고 편리한 건축물의 공간과 위용을 과시하고 이동인구 확보,상업적 메커니즘을 겸비할 목적으로 아케이드의 조성은 도시문화의 대세가 되어 버렸다.
나 역시 1980년대 초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했다.당시엔 현재와 같은 아케이드 공간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신식 건물보다는 아파트보다는 문화주택이 많았고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식 시장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대학촌에는 으례 싸고 맛있는 음식가들이 즐비하였다. 부모에게 타 온 용돈이다 보니 대학생들의 지갑은 얄팍한 투명지갑이었기에 당연히 일반 음식점보다 대학촌의 음식값이 매우 저렴하고 인기가 있었다.한참 먹을 나이였기에 부모에게 타 온 용돈은 금방 없어지다 보니 '신문배달'도 하고 열공모드에 들어가 중간,기말고사 성적이 좋으면 성적 장학금도 받았다.성적 장학금을 받게 되면 솔직하게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대신 부모님은 수업료 전액을 은행으로 부치셨는데 할머니와 자취생활을 하다 보니 장학금은 생활비로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아무튼 싸고 맛있으며 정이 오갔던 서민들의 발자취가 물씬했던 재래식 시장을 몇 십년 만에 가보니 이제는 상전벽해로 변했다.특히 교보문고 옆자리는 피맛골라고 하여 싸고 맛있으며 전통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하였는데 그 자리도 도시계획에 의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아케이드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현대철학자이면서 유대인이었던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1,2>를 글의 소재로 삼고 한국 현대소설가이고 9인회의 멤버이었던 구보 박태원작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의 내용을 소설가 구보가 가상 인물로 화(化)하여 그럴 듯하게 스토리를 전개해 주고 있다.재미있는 것은 구보의 실제 인물은 이 글의 저자인 류신이라고 생각한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1934년대에 출간되었기에 현재 시점으로 보자면 80년 전의 일이고,글 속의 구보는 80년 후에 환생하여 독자들에게 그의 신분과 위상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소설가 구보씨는 모더니즘 바람이 불던 1930년대 기득권으로부터 소외된 지식인이고 무능력한 존재로 비춰졌는데 이 글에서도 그러한 내면을 반영하고 있어 문학작품과 예술성 간의 교묘한 매칭을 실감하게 한다.
서울의 풍경을 여섯 군데로 나뉘어 안내해 주고 있다.영등포에서 숭례문,경복궁에서 서울광장,롯데호텔에서 세운상가,홍대입구,코엑스몰,신사동 가로수길에서 강남역 그리고 구보(저자)의 보금자리가 있는 영등포로 이어지게 된다.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서울의 모습은 검은 아스팔트 길과 무심한 인간군사아의 표정들 그리고 격자무늬를 띈 다양다종의 건축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서울의 모습을 저자는 사유적 이미지로 포착하고 소설가 구보씨를 가상인물로 거리의 산책자로 등장시켜 스토리의 흥미를 더 해 주고 있다.인문교양 서적이지만 현대 서울의 모습을 피상적인 것이 아닌 완전 발가벗겨 놓은 상태로 보여 주기에 생생하고 현장감이 짙기만 하다.개인적으론 30년 전의 서울의 모습과 현재 서울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어서 읽는 의미가 컸다.특이한 점은 류신저자는 현대소설가 뿐만 아니라 유명인사들이 남긴 서울과 관련한 글귀들을 인용하여 서울 아케이드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도를 높여 주었다는 것이다.
"건축은 명백히 한 시대를 '고발'한다." - 함성호,『반하는 건축』-
세종문화회관의 가늘고 긴 열주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색깔이 짙은데 이는 박정희시대가 낳은 산물이고 복합상가의 최초의 대명사격인 세운상가는 짓자 마자 한국의 엘리트들이 대거 몰려 들어 갔던 곳이다.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아케이드라는 상품이 사유적 가치,이미지가 더해져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을지로 지하상가,롯데백화점 본점 지하상가,태평로 지하상가 등이다.나아가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내리면 코엑스까지 이어진 미로와 같은 아케이드 쇼핑몰과 하늘이 보일 정도의 반원형의 아케이드 형식,잠실역의 롯데월드 등은 소비자에 따라 도취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우울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케이드 문화가 결코 일반인들에게 즐거움과 도취성만 주는 것이 아닌 공간이다.군대식 규율사회였던 군사독재시절에는 ~해야 한다,~해서는 안된다 등이 사회를 지배했는데 이제는 탈규제의 부정성을 폐기하고 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띠는 '예스 위 캔'이라는 긍정은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 주면서 금지,명령,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이니셔티브,모티베이션이 대신하고 있다.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규율 사회의 부정성은 광인(狂人)과 범죄자를 낳고 반면 성과 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의식 변화면에서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아케이드 공간이 확장되고 점증되는 것이 과연 명품도시,서울에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많다.좁은 공간을 밀도성 있고 상업적 메커니즘에 맞물려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한국 고유의 전통 건축양식을 시대에 맞게 잘 살린다면 관능미,시선의 교환,인간 상호 관계 증진,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에 일조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