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2 - 순수한 모순의 사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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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은 고독하고 쓸쓸한 그림 그리기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그가 홀로 되어 안타깝게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을 안 공예학원장 및 화우 등의 주선에 의해 통영으로 몸을 옮긴다.부산 초량진,범일동,아카자키 수용소와 같이 떠들썩하고 지저분하며 숨막히는 곳이 아닌 마음의 위로,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 통영은 그가 그림 그릴 곳으로는 적지였다는 생각이 든다.문득 고향이 통영인 박경리의 소설의 무대이기도 했던  <파시>의 작품이 시대적 배경과 흡사하여 잠깐 그 시절로 푹 빠지는 듯 했다.외고집과 순수한 열정으로 그림에 열중했던 그를 구상 시인은 정신적 멘토이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무엇을 바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닌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존경했던 분이기에 구상 시인은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본다.

 

 그렇게 통영에서의 그림 그리기 작업을 하던 이중섭에게 구상시인은 아내 이만덕과 자녀를 만나러 가라고 선원증까지 만들어 준다.아내 이만덕은 인편에 한국으로 일본도서를 보내서 이를 판매한 돈으로 방 한 칸이라도 얻을 요량이었는데 국내 경기도 좋지 않아서인지 제 값을 받지 못한 채 일본에 있는 아내,자식을 만나러 간다.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일전에 장모될 사람,처형될 사람에게 반은 퇴자를 맞았기에 입성이라도 제대로 차리고 가는 것이 상례이건만 그는 작업복에 가까운 복장과 후즐그레한 용모로 장모를 뵙게 되는데 상견례는 커녕 등을 돌리고 마는 장모,중간에 끼인 아내 이만덕은 그래도 남편 이중섭의 장래를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말을 한다.자전거가 갖고 싶고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던 아내 이만덕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서울,대구 등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게 된다.미도파 백화점에서 열었던 <이중섭 개인전>이 대체적으로 잘 끝났지만 군동무(群童舞)》가 춘화로 오인되어 대구 전시회마저 정신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서 그는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림 그리기에 대한 평소의 견해를 피력한다.

 

 "작가의 본질은 어떤 대상을 어떻게 조형화 하느냐에 그 자리매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같은 그림을 다른 풍의 그룹전에 출품했다고 해서 양다리 걸치기라든지 지조 없는 놈이라고 매도하는 건 작가의 발목을 묶는 거나 다름없어요." - 본문 -

 

 

해방후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그림 그리기마저 그것에 휩쓸려 가는 것에 환멸을 느낀 이중섭은 무한한 자유를 얻으려 남으로 피난을 오고 제주 서귀포에서의 단란하고 화목했던 1년 정도의 기간이 그의 삶에서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외롭고 고독했던 이중섭은 아내 이만덕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사랑과 (다시 만날)기약 등으로 몇 날 며칠을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수많은 편지왕래를 통해 그가 이만덕을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이다.술과 담배,공복으로 생을 살다 갔던 그는 죽어서도 아내 이만덕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사대 대장부로서 자수성가를 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식구들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한다.아내 이만덕 역시 남편의 부음을 편지로나마 접했음에도 불구하고,그의 절친 구상시인의 부음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인과 같은 따뜻한 정리(情理)는 부족했다고 본다.

 

이번 글이 이중섭의 미망인 이만덕여사가 지유텐 작품전에서 이중섭이 태양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받은 팔레트를 서귀포시에 증정하면서 이 글은 탄생했다고 본다.오밀조밀하게 완성도 높은 이중섭의 삶을 조명하고 해석한 최문희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아련한 여운과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감명을 안겨 주었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격언을 새삼 상기하게 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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