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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잔칫날처럼 - 고은 대표시선집
고은 지음, 백낙청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고은 시인의 팔순을 맞이하여 칠순 기념으로 출간된 시선집 <어느 바람>을 증보해서 간행한 <마치 잔칫날처럼> 240편을 읽어 가노라니 과연 고은 시인의 인생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백낙청평론가를 비롯하여 김승희,안도현,고형렬,이시형 네명의 시인이 시기별로 분담하여 후보작을 고른뒤,백낙청 평론가가 최종 선정을 하여 이 시선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마치 고은 시인의 팔순 잔치에 대비하여 고르고 고른 흔적이 잘 나타나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백낙청 평론가의 말대로 시인들과의 협동작업의 의미를 되살리고 잔치 기분을 한층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은 시인은 본명이 고은태인데 끝자인 태자를 빼고 고은으로 바꿨다고 한다.일제강점기시 한학과 한글을 깨우치고 고전소설과 연애소설에 탐닉한 고은 시인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정신적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지만(살아가면서 정신적 고뇌로 자살을 몇 번 시도한다) 통영 도솔사 효봉 스님의 제자가 되어 상좌생활을 1962년까지 하게 된다.종단의 행태에 실망하여 평승려로 있다가 1963년 환속하게 되면서 시작(詩作)을 꾸준히 하게 되고,전태일 분실자살사건을 접하면서 군부독재비판,사회부조리 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군부독재시절 갖가지 이유로 연이은 투옥 생활과 고초를 당하게 되지만 그의 반려자 이상화교수를 만나면서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게 된다.
고은 시인의 시세계는 초기에는 허무주의와 탐미주의가 주를 이루어졌지만 근래에는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비판의 날을 드리우고 있다.지식인이 자신의 사복만 채우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길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고 사회구성원이 상생하려면 어떠한 삶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그의 시에는 그대로 잘 묻어나 있다.그 대표적인 시집이 30권으로 이루어진 만인보이다.그중에 18권째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현대 한국사회를 주름진 인물,군사독재,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그는 셀 수도 없는 시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안타깝게도 시를 좋아하는 애독자가 많지 않은지 그의 작품이 잘팔리지 않은 점이 아쉽기만 하다.한국의 독자들도 시세계에 좀 더 눈을 돌려 시구가 전달하고 있는 세상의 풍정을 감상하는 것도 삶의 이력을 보다 풍요롭게 다져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인상 깊은 시는 다음과 같다.대장경의 후반 부분에 나오는 "한반도야 한반도야 이대로는 안되겠구나,매스게임 가라 매스게임 가라,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뭇사람을 거룩하게 하라,한반도야 한 이삼백년 아니거든,눈 딱 감고 막무가내로 천년만 가라앉아라"인데 시인의 말씀대로 싸구려 권세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정치 분위기를 정화시켜 모든 백성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 주기를 갈망하고 있다.그리고 <문의마을에 가서는 수몰된 마을을 그리워 하는 대목이고 <경부고속도로 하행>에는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농촌마을의 옛모습을 찾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데 고속버스 차창 밖으로 드러난 경기평야의 모습을 시공감각적으로 들려 주고 있다."연이(然而) 경기평야 아직도 간간이 논 남아 모심은 논 개구리 소리 먼먼 기미년 만세 소리 자오록이 들리는 듯 하군 기막히군" 모심고 도랑에는 꼬물꼬물 올챙이와 쉴세없이 지저귀는 왕성한 개구리 소리 나아가 그 소리가 기미년 만세 소리로까지 승화되어 시간을 뒤로 재생시킨 시인의 탁월한 시적 감성과 상상력은 노련미마저 감지하게 만든다.그외 상기의 시보다 더욱 짧은 행으로 된 상징성을 띤 작품들도 많다.
아직도 현역으로 왕성한 시작을 하고 계시는 고은 시인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애정있는 독자들의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하지만 그의 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가치,작품성은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기에 근간 낭보가 한반도의 대지를 적셔 주기를 갈망한다.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한반도 전역이 잔칫날이 될테니까.그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날이 오면 글쓰는 사람들은 신명이 나고 친구(親舊)를 해후한 것 마냥 얼싸안고 기쁨과 환희를 함께 나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