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생연 - 열여덟 번째 봄
장아이링 지음, 홍민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반평생 내지 덜 익은을 의미하는 반생은 어느 쪽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를 약간 고민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니 (개인적인 생각)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의 스킬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이리 저리 미로의 늪을 헤매도는 인물들의 얘기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시종일관 사랑하는 사람에게 로맨스에 가깝기보다는 상처와 후회,갈등과 주저함이 반생연 속에는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과연 서로가 좋아해서 백년해로를 이어가는 것이 최상의 모습일텐데 장아이링작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뒤섞어 놓고 누가 누구와 맺어져 살아갈 것인지,아니면 도덕적,윤리적인 면에서 부적합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케 하려는 의도도 숨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장아이링작가는 보기 드물게 부르주아 계층으로서 해외유학파이지만 홍콩이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자 학업의 길을 접고 글쓰기로 전향하게 된다.그녀는 중국의 근.현대의 사회모습과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얘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루쉰과 함께 현대중국문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말년에는 LA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개인적으론 <경성지련>을 읽으면서 장아이링작가를 알게 되었다.남.녀간의 연애과 일상을 다루면서 봉건적인 사회제도와 외세의 침략의 와중에 주인공 남.녀가 겪어야 하는 시련과 고뇌,번민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중국은 일본에 맞서 8.13항전을 치뤄 내는데 이에 패배하고 백성들은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이 글의 등장인물은 대략 스쥔,만전,수후이,만루,홍차이,위진,추이즈 등이다.스쥔과 수후이는 대학 동창으로 룸메이트까지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이다.기계공학과를 나와 같은 공장 엔지니어로 근무를 하다 스쥔은 만전을 알게 되고 그녀의 외모와 성격 등이 맘에 들어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결혼까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스쥔은 성격이 우유부단하면서 숫기가 없다.의사인 위진을 알게 되면서 만전의 식구들은 장래를 위해 위진과 결혼을 시킬 생각이었는데 만전은 도중에 언니가 사는 곳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갇히게 된다.우연인지 필연인지 언니의 남편 홍차이는 처제의 외모에 탐닉하다 아내인 만루가 모르게 처제와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갖게 된다.만전은 형부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낳은 아이의 양육권 및 재산문제,헤어짐 등을 놓고 심한 갈등과 번민을 하게 되는데 그녀가 스쥔을 얼마나 못잊었으면 임신 중에 스쥔과 같은 자식을 꿈꾸었을까.한편 스쥔은 의사 위진이 만전과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남자답게 자신과 만전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소신과 당당함으로 그녀의 부모를 설득하지를 못했을까.

 

 이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참으로 복잡하다.예를 들어 스쥔과 결혼하는 추이즈는 한때 수후이와 좋아했던 관계이고 의사 위진은 만전의 언니 만루와 가까웠던 사이였기도 하다.형부가 처제를 강제로 씨를 뿌려 후세를 만들고(언니 만루는 씨받이로 동생 만전이 적합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서는 사랑의 진한 감정은 찾을 길이 없고 처제는 생긴 자식의 양육권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처연한데 처제(만전) 어머니 구 부인은 창피하지도 않은지 형부와 함께 사는 것이(경제적인 문제를 놓고) 훨 낫다고 가세한다.그러는 가운데 언니인 만루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만전의 옛사랑 스쥔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가업을 승계하려 직장에 사표를 내고 고향인 난징으로 간다.그곳에서 추이즈와 알콩달콩 살아가고 만전은 마음만은 스쥔을 오매불망한다.스쥔도 절친 수후이는 사업관계로 도미(渡美)하여 십 여년 만에 귀국하지만 함께 살던 부인과 이혼을 한 상태로 상처를 경험했다.

 

 좋아했던 사람과 함께 오래도록 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과연 남.녀간의 사랑은 알 수가 없다는 점,그리고 쇠창살과도 같은 모진 운명을 걷는 것이 남.녀간의 관계인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게다가 가족과 절친과의 관계가 이중삼중으로 복합시켰다는 점과 언니의 남편이 후세를 보기 위해 처제를 탐했던 점을 놓고 볼 때 과연 개인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언니와 친어머니가 씨받이를 적극 권장할 정도였고 그 이면에는 딸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속물근성도 엿보였다.문제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딸에게 형부와 함께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라는 대목에서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어디에 놓아야 할 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중.일전쟁의 한복판이 상하이와 난징이었다는 점이 중국현대사의 상처와 굴곡이었다는 것을 장아이링작가는 상징적으로 무대배경을 삼았으리라 생각한다.게다가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고도 통찰력 있게 묘사하고 있는 점도 잊을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