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에서의 사유 - 청년 문화연구가 최태섭의 삐딱하게 세상 보기
최태섭 지음 / 알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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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학력 인플레의 시대에 비정규직,알바의 정중앙에 높여 있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을씨년스러운 시절이 언제 풀릴지 모를 정도로 오리무중은 계속 되고 있다.보리 고개의 시절이 힘들고 고역스러워 자식들에게만은 고통을 남겨 주지 않으려 1세대 위의 부모들은 허리끈을 졸라 매면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간난신고의 세월을 다 바쳤다고 회고한다.나도 그러한 부류 중의 하나이지만 제대로 된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되지 못해 심리적인 위축과 낮은 자존감으로 버텨 나가고 있다.어느 사회나 전사회 구성원의 생활의 질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겠지만 신자유주의(1980년대 레이건에 의해)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 사회에도 199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FTA 등 선진제국들의 칼바람이 몰아치면서 산업의 기초인 농업의 근본마저 흔들릴 정도였고 농민들의 거센 항의와 시위는 공권력같지 않은 공권력에 의해 산산히 무너지고 말았다.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노숙자의 대량생산과 비정규직의 도입으로 한국사회는 어느덧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사회구조,시스템을 전방위적으로 바꿔 놓고 말았다.

 

 모서리 위의 인간이란 추락(墜落)에 대한 공포와,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안간힘과,그 딱딱하고 각(角)진 공간이 제공하는 통증 때문에 그다지 쾌적한 존재를 영위하지는 못한다.그럼에도 왜 굳이 평평한 면들을 놔두고 모서리를 택했냐고 묻는다면,언젠가부터 모서리가 이 세상이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한 '공간'이 되었다고밖에는 답할 수 없다. - 본 문 -

 

 밥을 먹는 식탁,회의 및 모임에서의 탁자에서의 모서리는 인원이 가득차서 앉을 자리가 없는 가운데 모서리 한켠에 앉아 있는 불필요한 잉여의 존재를 상상해 볼 수가 있다.모서리라는 의미가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불완전하면서 낙오된 자리이고 현상으로 보면 제도권 축에 끼지 못한 어정쩡한 존재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지 않기에 한국사회의 실상을 예리하게 해부할 수는 없지만 피부로 느끼는 물가지수,사회구성원간의 까칠한 관계,심대한 빈부격차,연고를 통한 줄서기,돈과 권력의 기승과 사회지배 등을 실감한다.돈과 권력의 속성을 들여다 보면 갖은 자는 태생부터 갖은 자이고 어쩌다 기회(시류)를 잘 타고나 졸부가 된 부류도 있을 것이다.나아가 요즘 권력은 자본을 쥐고 있는 기업인에 의해 사회가 좌지우지 되는 꼴이 되어 버렸다.항간에 정의와 상식이 회자되고 관심을 갖었다고 하지만 돈과 물질 앞에서는 나라의 수장도,사법권,언론,경찰,공무원 등도 굽신거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유전무죄,무전유죄가 일개 구성원을 잣대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개인의 표현과 창의력이 존중되는 시대는 맞는 말이지만 이를 계발하고 탁월하게 발휘하여 사회적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이를 발현하기 위해 학생들은 학부모의 열렬한 지원과 떠밀림에 의해 유아부터 대학(대학원,유학)까지 막대한 금전을 뿌렸건만 개인이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하는 고학력 실업사태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건만 남의 일 같지가 않다.얼마나 사교육을 빡세게 시키고 있으면 대한민국이 '교육왕국'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실상은 외화내빈의 형국은 아닐런지 모르겠다.사교육은 좋은 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사오정(사오십대 정년)의 한파까지 곂쳐 경제적 실권을 상실한 가장들의 비애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경제적 위기가 몰고 온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즉 대기업위주의 시장형성과 조직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층의 밥줄 놓치 않기가 세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서민들이 겪는 현재 및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낮추고 있다.얼마나 살기가 힘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좌절과 불안,우울감이 극대화 되었으면 자살율 세계1위의 악명을 떨치고 있겠는가.그것도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하니 과연 경제선진국 맞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사회현상은 겉으로는 풍요롭고 평온하게 보이지만 사회구성원들의 관계는 흑과 백의 이분법적이다.흑이냐 백이냐가 가치관일 뿐 중간개념은 찾아볼 수가 없다.간혹 있더라고 이것은 바람만 불면 한쪽으로 늘어붙고 나자빠지는 것들이다.요즘 사회초년생들이 1980년대 후반생들이다.이들은 부모세대가 386세대인데 부모세대와의 생각과 이념의 가치가 물과 기름과 같다.두 세대 모두 출세를 위해 공부에 진력을 했지만 386세대는 한국사회의 거칠고 공포스러웠던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 왔다면 1980년대 후반생들은 1988년 올림픽과 함께 아파트 개발붐과 신도시형성에 따라 풍요롭지만 개인주의에 가까운 시대를 타고 났다고 보여진다.공동체사회가 무너지면서 거주지가 아파트로의 이동은 개인적 삶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따뜻하고 배려하는 인의예지신의 덕목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특히 부모가 맞벌이라면 아이는 온종일 사교육과 혼자가 되어 대화를 나누고 문제점을 찾아가는 능력을 상실하고 주어진 밥그릇도 찾아 먹지 못하는 온실 속의 세대가 되었다고 본다.비록 어렵게 사회진출을 했더라도 기존세대와의 다양한 격차와 갈등이 상존할텐데 기존세대는 군대식 문화에 젖었다면 지금세대는 개인의 능력과 표현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일반적 인식은 제도와 절차 그리고 법의 이면에서 암약하는 권력들의 역학이 이 사회의 진실이라는 냉소적인 버전이다.이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선언에서부터 MB 정부에서 불거져 나온 수많은 비리와 역설적 슬로건(공정사회 등)들로부터 더더욱 근거를 두고 있다. - 본문 -

 

 

문화평론가로서 연봉 1,000만 안짝으로 삶을 지탱해가고 있는 최태섭저자는 젊지만 문체는 예리하고 분석적이다.가식이 없는 문체에 건전한 비판력이 돋보이고 있다.일전에 읽은 <인간의 조건>,<현시창>,<응답하라!PD수첩>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이 글은 더욱 이해 및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지도층들은 과연 국리민복을 실행하려는 의지와 실천력을 갖춘 인물들일까.21세기를 살고 있는 한국사회가 보다 더 나은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바라고 진정한 경제선진국을 원한다면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내놓고 사교육비를 줄이고 복지정책(의료보험,노령인구대비책 등)을 점진적으로 늘려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구호로 외치는 이러한 정책들이 실행화되지 않는다면 높아진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그리고 '나는 잘나고 너는 못낫다'라는 이분법의 사회구조를 지도층부터 과감하게 털어버리고 몸과 마음이 서민들의 상처와 고통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를 현실에 맞게 대처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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