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실물
구한말 조선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陳彩仙)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무속인의 딸이었지만 소리에 소질이 있어 동리정사 즉 신재효(申在孝)가 소리꾼들을 모아 놓고 소리를 가르치던 곳을 찾아 비록 자신은 무속인의 딸이지만 소리가 좋아 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끈덕진 간청에 의해 신재효는 진채선을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남자 명창이었던 광현과 그녀를 심심계곡 폭포가 뚝뚝 떨어지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폭포소리를 능가하는 득음을 내기 위해 똥물도 마다하지 않고 벌컥벌컥 마시면서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인고의 세월을 참고 또 참아 냈다.진채선은 명실공히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이면서 심청가중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 드는 장면을 구슬프면서도 유연한 목소리를 전주대사습 놀이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소리를 뽐내면서 명창으로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당시 한성에서는(1867년 경복궁 재건에 따른)낙성연이 열리면서 소리꾼인 채선과 광현은 바늘과 실과 같이 채선은 소리를 뽐내고 광현은 고수로서 장단을 착착 맞추어 간다.이 낙성연에 자리를 한 흥선대원군의 눈과 귀에는 젊고 고우며 탱탱한 자태에 소리마저 사람의 넋을 흔들어 놓을 정도이니 그는 그만 채선에게 홀리고 만다.당시 흥선대원군은 운현궁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에서 채선을 그곳으로 데려 오면서 잠자리를 강요하는 대신 후한 대우를 약속한다.그런데도 채선은 흥선대원군에게는 마음의 빗장을 열지 않고 뇌리에는 연모하는 신재효스승이 떠날 날이 없었다.한성에서 고창의 동리정사는 천리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모하는 스승을 만나기 위해 채선은 광현에게 한성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승을 만나러 가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배를 타고 배멀미를 하면서도 스승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과 도중에 자신의 신변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의 심경이다.
참고로 신재효선생은 직선적이고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리듬의 동편제와 유연하고 화려한 성음,박자가 느려 너름새가 쉽게 이루어지는 서편제의 장점을 조화시켰다.그리고 여섯 마당인 춘향가,심청가,박타령,적벽가,변강쇠가의 핵심을 사설개작하여 체계화하기도 했다.
조선팔천의 하나인 소리광대는 하층민 중의 하층민이었지만 흥선대원군의 눈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미모와 소리를 겸비한 채선이 스승을 만나러 허락없이 떠났다는 점에서 우선 광현을 조지고 채선은 한성으로 돌아오면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만 했다.특히 봉건적이고 전제적인 조선왕조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로서 그의 비위를 맞추지 못한 괴씸죄는 채선에게는 커다란 상처이고 아픔이었다.하늘과 땅이 울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갖은 흥선대원군도 내정개혁과 쇄국정책이 개혁 세력과 마찰을 빚었는데 특히 며느리 명성왕후와의 관계는 견원지간이었다.그러한 와중에 대원군을 시해하려는 음모세력에 의해 폭파 미수 사건이 벌어지고 그 음모의 배후자는 명성왕후라는 심증만 갔을 뿐 증거를 찾아 내지를 못하고 말았다.
구한말 외세의 물결이 거세지는 와중에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대원군이 다시 권력을 잡는듯 했지만 명성왕후는 시아버지를 중국의 마건충 등에게 인질로 중국 톈진으로 끌려 가게 된다.이 소식을 접한 채선은 변복을 하고 삼개나루에서 배를 타고 죽음의 문턱에서 앓고 있는 신재효스승을 만나러 떠나지만 신재효는 채선을 만나지 못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채선아"라는 소리를 내며 운명을 달리한다.채선은 동리정사에 이윽고 당도하지만 스승의 목숨은 이미 끊어지면서 그 슬픔을 도리화가로 불렀다고 한다.한편 중국에서 4년간의 인질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흥선대원군 역시 나이가 들어 노쇠한 몸이지만 가슴 속에는 한떨기 채선이가 있다.그녀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녀의 행방은 묘연하고 그리움은 한없이 쌓여만 간다.
사료에는 흥선대원군이 작고한 뒤 채선이가 3년 간 시묘생활을 거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이정규작가는 사료와는 달리 채선이 스승을 연모하는 마음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았나 싶다.어찌되었든 소리광대가 조선왕조의 실세였던 흥선대원군의 눈에 들어와 첩실로 들어 오지만 채선의 진심은 스승이 기거하는 동리정사에서 맘껏 다양한 소리를 배우면서 자유로운 소리광대로 살아가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그녀의 일생이 1847~?로 나온 경우도 있고 1847~1903년으로 나온 경우도 있는데 어느 것이 정확한 기록인지 모르겠다.조선 최초의 소리 명창인 진채선여인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이색적인 로맨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아슬아슬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