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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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세이의 제목이 대조를 이루는 것 같아 참신하면서도 독창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바다 건너 창공을 날아 머나먼 이국땅을 밟게 되면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다.특히나 주변머리 없이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여행지에서 얻을 것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소위 돈 쓰러 가는 것밖에는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풀 한 포기,바람 한 점,구름의 숨결,사람들의 일상을 예리하면서도 감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재주가 있지 않으면 쓰다가 만 낙서 정도로 보일 것이다.

 

 말과 글이 다르고 살색깔과 풍습,사회의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역사와 문화가 자국과 다를 것은 뻔하겠지만 똑같은 사람으로서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모습은 어느 나라든 공통적인 인간의 본성이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을지라도 손짓과 발짓,눈빛,다양한 감정의 무늬로 타국인들과 소통과 교류가 가능할 것이다.젊고 혈기왕성하며 호기심 많은 청춘의 시대에는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좁은 울타리의 소견을 벗고 넓고 광활한 세계의 모습을 눈과 귀로 포착하여 이를 이성과 감성을 잘 버무려 붓이 가는데로 여행의 흔적을 농밀하게 전해 준다면 독자로서는 그곳에 안착해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질 것이고 때로는 선망과 동경심까지 빚어낼 수가 있으리라.

 

 차가운 광풍이 온몸과 머리를 휩쓸고 지나가게 되면 마음은 가을 낙엽과 같이 우수수 떨어지고 나뭇가지에는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고독하고 처연한 긴 겨울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이 든다.차가운 광풍의 대지에 놓인 나그네에게는 따뜻한 차 한 잔이 그저 고맙기만 할 것이다.이 처량하고 말주변 없는 나그네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일지언정 따뜻한 시선으로 대해 주면서 잠깐이라도 아늑한 곳으로 들여준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나는 여행을 많이 다녀 보지를 못해 늘 여행에세이를 통해 작가의 따뜻한 감성어린 시적인 표현 앞에 삭막한 마음이 누그러들고 타국인들의 인정어린 소통과 대화,분위기를 읽어 가면서 여행의 묘미를 재삼재사 음미하곤 한다.

 

 혹자는 돈을 벌어 노후에 여한이 없을 만큼 부부끼리 세계여행을 준비한다고 한다.그런데 사람의 앞 일은 한 치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또한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듯 하염없이 흐르기만 한다.가고 싶다고 마음이 움직이고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면 앞뒤 가릴 것 없이 훌쩍 떠나는 모험심과 용기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상의 시간은 예행연습 없는 마라톤과 같이 무상하게 흐르기만 한다.이병률작가의 여행담을 음미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시간을 만들어 주인공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 본문 -

 

 

세상 어디를 다녀봐도 사람 구경하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인상에 오래 남게 마련이다.어리바리한 이방인에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얼굴색,지식,신분 등은 달라도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보배로운 선량함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길과 숙소,목적지를 알려 주는 소소한 친절함과 미소 속에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사랑의 냄새라고 생각을 해본다.짧은 일정을 쪼개고 쪼개면서 발품을 파는 나그네들은 여비를 절약해야 하는 현실적인 면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도 있겠지만 부랑자를 만날 우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좋다,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 본문 -

 

 교토,삿포로,쓰가루,루마니아,예멘,케냐,파리,항저우 등의 거리,풍물,사람들의 일상과 활기 등을 마치 엽서에 사랑하는 이에게 육필을 전해 주고 있는 감성적인 얘기들로 넘쳐 나고 있다.화사한 꽃,아기자기한 인형,재래식 이발소의 모습,뭔가를 주섬주섬 전해주는 인심 좋은 아저씨,폭설로 길이 막힌 은세계,고색창연한 건축물 등이 한 컷 한 컷 여울져 가고 있다.그곳 역시 살아 가려는 인간의 활기찬 생명력,바쁘게 살아가지만 동중정을 즐기는 한가한 모습들에서 사람의 색깔과 숨결,무늬가 다채롭기만 하다,익어가는 이 가을 날 홀연히 어디론가 사람의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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