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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연구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6년 5월
평점 :
빛고을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일제강점기였던 1929년에는 일제에 항거했던 한국학생들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있었고,1980년에는 군부독재의 비상계엄조치에 항거하던 광주학생들의 운동을 폭도로 규정하고 선량한 시민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희생되었던 민주화의 요람지이다.1980년 당시 나는 고교생이었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접할 수가 없는 상태였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몇 년 뒤 전주성당을 갈 일이 있었는데 당시 공수단에 의해 잡혀가고 희생되었던 학생과 시민들의 처참한 모습은 목불인견 그 자체였다.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무고한 학생,시민들을 무지몽매하게 희생을 시켜야만 했던가.군사독재정권 18년 간도 지긋지긋한데 또 그러한 시간과 세월을 의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삶을 강요하는 것이 말이 될 법한 일인가.생각해 보면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통탄할 일이다.그리고 그 비상계엄조치를 단행하고 공수단을 내려 보낸 장본인은 아직도 후안무치에 가깝게 살아 남아 있다는 점이 역사적인 정의의 편에서 볼 때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정신적 트라우마 및 상처를 안고 살아 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박상률작가는 당시의 상황보다는 상처입은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3편의 이야기로 나누어 들려 주고 있다.당시엔 연민의 정과 인간의 삶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어 내려 가면서 내내 삭히고 쌓아 두었던 분노와 통한의 눈물이 저절로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그리고 역사의 기록은 수정할 수가 있어도 기억은 수정할 수가 없다는 말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당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던 이들이 아무리 하늘에 대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려 해도 그 죄는 씻을 수가 없는 것이다.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몇 번의 정권이 바뀌면서 그들에 대한 사법처리문제는 비겁하고 용기없는 정치꾼들의 비이성적인 논리에 의해 살아 남았고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아직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은 없지만 한많은 세월을 살아가야만 한다.정치가 제대로 되고 정의와 상식이 바로 섰을 때 국가와 사회는 제대로 된 톱니바퀴의 모양을 띠면서 나라는 제대로 굴러가는 법이다.
<아기 업은 소녀>는 그 해 5월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정신을 놓고 가족을 떠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는데 주인공 소녀는 알몸이 되고 손아래 동생 둘까지 챙겨야 하는 소녀가장이 된다.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세무소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세무사의 친척은 사무장으로서 화자를 성추행을 한다.사무장은 바로 광주 진압 작전에 나갔던 군인이었던 것이다.사무장이 화자에게 행하는 성추행과 성폭력 그 대가로 준 돈다발을 어둠 속에 날리게 되는데,이것은 후일 국가에서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아버지가 받은 돈을 허공에 날리는 것과 오버랩된다.그리고 화자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그림이 '아기 업은 소녀'인데 당시 열세 살 소녀로서 동생을 업고 있는 모습과 현재 스물 다섯 살의 숙녀 사이의 시간 간극을 말없이 회고한다.
<나를 위한 연구>는 기억상실자이자 왼팔이 없는 불구자로서 노숙자인 화자 역시 광주민주화 운동의 희피해자이다.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회복해 가는 속에서 당시 상흔을 지닌 간호사와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 나고 간호사였던 그녀 역시 가슴에 총을 맞고 가슴 하나를 잃게 되는 비극의 인물이다.둘은 어느새 사랑이 싹트면서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신의 왼팔에 대한 수배령이 해제된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이다.끝으로 <그와 또 그>의 이야기는 키 큰 사내가 키 작은 사내에게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면서 회사를 가지 않고 산 속을 배회하게 된다.산에서 개를 잡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축 늘어진 개가 자신이 광주에서 겪었던 것과 연관이 되고 키 큰 사내는 노조운동도 했던 운동권이기도 했다.키 작은 사내가 키 큰 사내를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키 작은 사내는 키 큰 사내를 알아 보고 그 차 안에서의 기억을 살려 주고,수치스러운 과거를 버릴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둘은 어느새 친구가 된다.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둘은 경찰과 사람들이 대치하는 시위현장을 목격하면서 최루탄 터지는 소리,호루라기 소리,사이렌 소리가 1980년 그 날의 광주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후세를 위해서도 역사의 정의는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비단 광주의 비극이고 슬픔을 딛고 일어나 학연과 지연,세대간 갈등,지역감정 등의 낡은 이념의 낡은 것들은 이제는 버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다만 광주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고 하지만 희생자 및 유족들의 가슴에는 죽는 날까지 원한과 원혼이 살아 있기에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지속적으로 위로하면서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함이 정치하시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