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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박완서작가께서 작고하신 지가 어느덧 3년 째이다.40대에 등단하면서 작고하시기까지 주옥같은 작품들을 수없이 남기시고 독자들의 애정을 듬뿍 받으셨던 분이시다.수많은 작품들을 들춰내도 아직도 땅에 묻어 있는 보물과 같이 파헤치면 또 나오는 보물과 같이 꽁꽁 숨겨 놓았던 단편들이 작가의 자화상을 그려 놓은 것과 같다.늙어서 혼자가 되면 잠자리가 시리고 그 옛날 남편과 자식들을 보살피고 뒷바라지를 했던 아득한 시절이 어제와 같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갈 것이다.
박완서작가께서 노년을 산과 들을 벗삼아 작품의 모티브를 구상하면서 뒷산,앞뜰을 거닐던 시절의 얘기들과 삶의 소회가 오롯하게 담겨져 있는 아차울의 <노란집>은 밝은 느낌을 주지만 작가가 들려 주는 얘기는 먼 옛날 소녀시절의 얘기부터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구슬프지만 담담하게 그것을 맞이하려는 단단한 의지도 엿볼 수가 있는 글이기도 하다.아무리 산세를 등지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갔던 작가였지만 그래도 한이불,한배에서 낳은 남편과 혈육의 정보다 나은 것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그러한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니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혼자 되신 할머니의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 이불을 들러씌고 옛시절 할아버지와의 고단했던 삶을 들려주시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이팔의 아름나인 나이,그저 순하고 무던한 줄만 알고 지내던 마을 청년의 심상치 않은 뜨거운 눈길을 등뒤로 느끼게 해준 것도 이런 봄볕이 아니었을까.사람은 속절없이 늙어가는데 계절은 무엇하러 억만년을 늙을 줄 모르고 해마다 사람 마음을 달뜨게 하는가. - 본문 -
살아오시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온갖 소회들이 잔잔한 파장과 같이 흘러오고 흘러가고 있다.길가에 수북하게 피어있는 야생화와 같은 수수함과 봄날의 화사한 벚꽃의 흐드러진 무늬들,그리고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국화의 문양과 같은 빛깔들의 다채로운 소재들을 아로새겨 읽는 내 가슴은 한세대 윗분인 어른이시면서 존경하는 작가였기에 시간과 세월 앞에 인간은 다만 흔적을 남기고 가는 오래된 발자국과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상기되었다.삶의 끝이 다가올수록 삶을 겸허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하려는 작가의 심상이 일상의 일기를 보듯 황혼의 미를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대로에서도 한참이나 들어가야 하는 아차울의 노란집은 앞뜰엔 약간의 텃밭이 있고 뒷에는 야트막한 산길이 있어 조금만 부지런하면 활력을 되찾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는 곳이다.어린 시절 개성에서의 추억과 서울에서의 학창시절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결혼하여 전업주부로 살아가던 시절에 '심심해서' 글을 썼다는 등단 소회와 함께 꾸준하게 글쓰기에 몰두하셨던 박완서작가의 사랑,행복,돈오,하산길,삶의 사랑,황혼의 선물이 자연의 섭리와 같이 수수하고도 꾸밈없는 필체로 다가오고 있다.늘 수줍은듯 밝게 미소를 지으시던 작가의 유고작으로서 공인이었지만 순수한 자연인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 글이었다.삶의 마지막까지 현역작가로서 생명력있는 글을 남겨 주시던 글을 읽노라니 작가의 다사다난했던 일생을 반추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