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삶의 지혜와 진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살아온 과거를 되돌아 보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요즘과 같이 사교육,선행학습 등의 풍요로운 교육의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돌이켜 보면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을 암기했고 구구단을 모두 외웠다.국민학교 전반부는 유신시절이었고 대의원선거가 있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나아가 잘 살아 보세라는 기치를 내건 '새마을 운동'으로 아침마다 풀뽑고 청소를 해야 했다.간간히 벽보에는 현상금을 내건 간첩 및 간첩선 제보가 눈에 띄었다.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육영수여사의 저격사건,박정희대통령의 암살사건 등까지 내가 기억하는 한국사회는 밝고 희망찬 분위기보다는 획일적인 흑백의 논리가 팽배했다는 점이다.게다가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선생님이 시험에 대한 힌트를 주는 달달한 시험이 과연 정신적 근육을 높였는가는 의문이다.교과서와 참고서,문제집이 학창시절의 전부였다고하면 지나친 것일까.요즘과 같이 독서록을 이용한 독서강화 및 토론중심의 교육이 어린시절부터 몸에 익혔더라면 나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자신만의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 갈 수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교육은 백년지대계이기에 가정,학교,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전인교육의 장을 실천적으로 이행해 나가려는 노력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1980년대 초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군부독재타도로 인해 대학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투석전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부상자,희생자들이 속출했다.사상과 이념의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에 사는 민주시민으로서 말 할권리,표현할 권리를 줄기차게 요구하여 미미하나마 아름다운 민주정치의 결실을 이룩했던 것이다.그런데 첨단산업 즉 IT산업,GPS와 항법장치가 발달하고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국토의 산허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파괴되면서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갔다.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대학을 나와 원하는 직장에 속속 들어가면서 산업역군으로서 경제성장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이제는 그 세대들이 사회의 현역에서 퇴역의 초입에 놓여 있다.산업화는 도농간을 갈라 놓았으며 사람이 사람답게 대하고 정을 나누던 공동체는 일시에 무너지고 말았다.회색빛 건물과 하얗게 빛나는 창들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물을 만나는 격과 같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더욱 가슴 아픈 것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시장중심주의 및 기업친화적인 정책이다.이로 인해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가 되고 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 및 불신감은 고조되어 간다.부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몇 퍼센트의 소수계층이 다수를 지배하면서 그들의 부와 권력을 분배하지 않으려는 오만과 고압적인 분위기 조성이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현대를 '허무주의의 시대'라고 말들을 한다.다신주의,다원주의,개인의 표현과 창의가 표면적으로 존중을 받고 있지만 개개인은 무엇에 의지하여 삶을 풍요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나가야 할 지를 모른채 망망대해에서 허둥지둥하면서 삶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삶의 체감지수는 그리 높지 않은게 실정이다.돈이 돈을 낳듯 갖은 자들만의 향연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기대,설레임을 안겨 줄 국가의 복지정책과 일자리 창출 등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사람들의 마음과 표정에는 망설임과 기다림,무표정과 상실,슬픔과 불안의 시간이 긴 터널 속에 갇혀져 있는 느낌이다.이렇게 절망과 상실의 시대에 놓여 있는 너와 나는 과연 어떠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만 할 것인가.서양의 고전적인 철학서와 문학작품들 속에는 비록 은유적이지만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뭔가가 담겨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대 서양의 철학과 중세 유일신으로 여겨지는 종교철학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표현과 같이 유일신을 믿는 풍조가 사라지고 개인이 믿는 만큼 개인의 발전과 사회는 돌아간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이렇게 과거의 삶의 방식으로는 현대의 삶을 지탱해 나갈 수가 없고 다신주의 및 다원화 되어 가는 시대에서는 인간중심,주제 중심주의를 부르짖을 수도 없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저나는 미국의 현대철학가로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그는 삶의 의미를 밝히는 성스러움을 세 가지 차원에서 찾고 있다.생성과 소멸,드러남과 사라짐의 교차인 자연 즉 퓌시스,없던 것을 있게 만드는 기술 즉 인간의 제작술을 뜻하는 창작인 포이에시스,그리고 메타 포이에시스는 퓌시스,포이에시스,테크놀로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그들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 기술이고,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것으로 부단히 옯겨 다닐 수 있는 재치와 기민성,기술을 의미하기도 한다.예를 들어 군중과 하나가 되어 일체감을 형성했다가도 어느 순간 냉철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이고,열광적으로 흠모했던 인물이라도 그 인물의 좋고 나쁜 점을 빨리 간파하여 분별하는 안목을 갖는 것이다.저자는 메타 포이에시스가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의미이고 가치라고 조언하고 있다.삶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되어 가는 아닌 만큼 개인의 삶의 목표를 부단히 추구하되 의미와 가치는 신으로 표현되는 인간 이외의 타자 내지 자연과 함께 다수의 주체가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의미는 생성되고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을 깊게 공감한다.복잡다단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들끼리 소통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고 작지만 파장이 긴 목소리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이 글이 고대,중.근대의 철학사상과 종교철학이 담겨져 있어 다소 난해함과 고루함이 없지는 않았다.다행히 역사적인 사상과 이념의 변모전개가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소중한 디딤돌이 되었고 성스러운 세 차원인 자연,창작,절묘한 균형 기술이야말로 소중한 가르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