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작가의 <아가미>를 읽으면서 신비스러운 인간의 존재의 유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몽환적인 요소도 함축되어 있었다.비현실적인 면이 다분했지만 인간의 조상에 대한 것을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각도로 생각할 수가 있어 의미가 있었다.그리고 이번에 나를 맞이한 파과(破果)는 제목,소재,글의 구성 모두가 특이하기만 했다.천상 구병모작가는 특별한 소재를 발굴하는데 특별한 능력과 다양성을 아우르는 천부적인 '끼'의 소유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원한이나 복수심,치정에 얽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 중에 청부살인을 의뢰하는 경우가 사회의 이면에는 횡행하고 있다.물론 청부살인을 의뢰받는 자들은 사안에 따라 금액의 고저가 다르겠지만 고귀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한낱 금수만도 못하다는 처연함과 서글픔마저 든다.청부살인을 의뢰한 자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를 저지르게 하고 관련 용역업체들과 암묵적인 합의하에 인간의 몸뚱이는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허공에 날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청부살인을 직업으로 삼아 사십여 년을 살아 오고 있는 주인공은 남자가 아닌 여자이다.요즘 나이 60이면 제2의 청춘이라고 할 정도이다.몸매만 잘 가꾸면 누가 노인으로 볼 것인가.그래도 세월은 육신의 세포를 하루 하루 갉아 먹고 있으니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이치일 것이다.육십대 중반의 여주인공 조각(爪角)은 사십여 년을 청부살인업(방역업체)을 하면서 먹고 살아 왔건만 아직은 그만 둘 입장이 아닌가 보다.그녀는 격투기 유단증도 보유하고 있어 유사시에는 특기를 충분히 발휘하고도 남았을 것이기에 겉은 여자이지만 속은 남성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각은 집안사정이 어려워 일찍이 부유한 집에 가정부로 들어오게 되지만 어찌하다 보니 사람을 혼절시키고 죽이고 소멸시키는 일에 휘말리게 된다.청부살인은 의뢰를 받자 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하는 대로 처리해 준다.일반인이 생각할 때는 끔찍할 만큼 소름이 돋고 전율을 일으키겠지만 그들은 그것이 직업이기에 인간의 생명은 한낱 해충과 같은 존재쯤으로 여길 것이다.조각은 마음의 스승인 류,그리고 자신이 살해한 남성의 아들(투우)와의 동상이몽격의 심리적 대립관계,그녀가 병을 얻어 찾아간 강의사와의 알쏭달쏭한 관계에 공사장 안에서 투우와 살육전을 벌이다 투우를 처참하게 목숨줄을 끊는다.

 

 언젠가는 삶의 동반자로서 '류'와 생의 후반부를 이어가고 싶었던 조각은 그마저 앞서 보내고 공사장에서 잃었던 왼손 대신 오른손을 싼값으로 네일 아트 서비스를 받는다.먼저 보낸 '류'에게 한 번쯤은 여성으로서의 미적인 용모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육십 후반의 조각도 이제는 물컹물컹 익어 변색되고 부패해 가는 파과(破果)가 아닐런지 모른다.현재의 그녀에게는 산산히 부서지고 상처난 영혼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조각에게 빛나는 삶의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이 일을 멈춰야 하지만 도둑질한 것이 이것 밖에는 없으니 아직은 '류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라고 한 대목이 쓸쓸하게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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