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가수의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구비구비 바다길에 배가오는데...를 어린 시절 LP레코드판으로 많이 들었다.청아한 목소리에 서정적인 가사말은 신선이 되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라는 시조 역시 위 노래말과 연결이 된다.한산섬이 있던 곳이 바로 통영이며 전적을 기리는 제승당(制勝堂)도 있다.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통영이라고 하는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고 할 만큼 야경은 황홀하기만 하다.
강제윤저자는 통영의 토박이가 아니지만 통영을 너무도 사랑하여 붙박이마냥 3년 여 세월을 통영에서 먹고 자고 관찰하고 체험한 결과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글과 사진,스토리텔링이 갓 잡은 물고기마냥 파닥파닥 살아 있다.통영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생활력과 맛깔스러운 통영 사투리도 자연 그대로이다.흔히 경상도 음식은 별로 먹을 게 없다고 하는데 통영은 아니다.토양의 정기와 바다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다채로운 재료와 음식들은 생기발랄하고 인체의 허기와 허약함을 채워 주고도 남는다.게다가 문화와 예술의 본향이라고 할 정도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들도 많은 곳이 통영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도시화로 인해 한반도 전역이 아파트,빌라붐이 일어났지만 지역 유지의 뜻에 의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동피랑(언덕,비탈)은 한 두사람 간신히 다닐 정도이다.골목 골목 벽에는 추억과 정감어린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동피랑에서 조망하는 통영 앞바다의 푸르고 푸른 남해의 섬과 섬들은 다정하고 도도하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동피랑에서 만난 어른들의 자연스러운 통영사투리와 사라져 가는 대장간의 고적한 모습들이 인상적이다.한자리에서 몇 십년간을 대장간,요술통을 밥벌이 삼아 식구들을 건사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삶의 숭고함마저 든다.
어디를 가든 때묻지 않게 순박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곳은 재래시장이 아닐까 한다.통영의 재래시장은 서민들이 산과 들에서 뜯고 자른 푸성귀부터 바다에서 건져 온 활어들로 가득찬다.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영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갖가지 활어들 앞에서 시선을 집중할 수 밖에 없는데 푸드 마일리지가 크지 않아 싱싱하면서도 가격도 착하기만 하다.그리고 여객선에 내놓던 점심식사가 충무김밥의 기원이 되고 '국풍 81'관제 행사때 대히트를 쳤다고 한다.속이 없는 김밥이지만 출출할 때 먹는 맛은 그만일 것이다.꿀빵도 빼놓을 수 없는 간식거리이다.먹거리 중에 하일라이트는 통영 다찌 상차림이 아닐까 한다.1인당 2~3만원을 내면 온갖 생선회와 해산물,반찬,기본 술이 나오는데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이다.
저자는 생선회를 극찬하고 있다.제철에 먹는 생선회는 정신줄을 잃게 할 정도라고 하니 통영을 아니 가고는 후회막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농어,대구,조개,광어,멍게,꼼장어,굴 등 이름도 셀 수 없고 가짓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기만 하다.생선회를 먹는 방법,먹기 좋은 시기,인체에 끼치는 유익함도 사전지식으로 충분하기만 하다.젓갈을 좋아하는 나는 볼락젓갈에 시선이 집중되고 말았다.광주의 홍어,제주의 자리돔에 비견될 정도로 통영사람들을 볼락구이,볼락젓갈을 애지중지한다고 한다.그맛은 달콤한 쌀강정같다고 하니 저절로 군침이 돌고 만다.
통영에는 본토박이 문화예술이 있는가 하면 외지인이면서도 통영을 못잊어 했던 사람들도 있다.백석 시인과 이중섭 화가는 외지인이면서도 통영에 대한 사연이 깊다.백석 시인은 통영의 처녀를 좋아해서 죽자 살자 쫓아 다니었건만 둘은 시간과 공간이 엇갈려 만나지를 못하고 친구를 통해 처녀의 오빠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건만 자신의 부도덕성을 일러 바쳐 백석은 그저 상사병으로 끝나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씁쓸한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으며,가난하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잇고 그림을 그려갈 수 있었던 이중섭화가의 초라한 삶도 새롭게 각인이 된다.
통영이 낳은 문화,예술인은 참 많다.이념의 희생자로 영혼에 상처를 입은 윤이상 그는 살아 모국의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해 윤이상기념관이 그나마 그의 삶의 궤적을 보여 주고 있다.영혼을 적시는 5000장의 편지와 중앙동우체국의 대명사 청마 유치환,토지,김 약국의 딸들,파시 등으로 널리 알려진 박경리의 굴곡진 삶,예술은 선생이 필요 없고 혼자 배우는 것이라고 했던 화가 전혁림은 생소하지만 독특한 추상화를 많이 남겼다.
그외 통영은 역사의 숨결과 아픔,문인들의 발자취,볼거리,먹거리,산책로 등이 많다.충렬사,서화담,세병관,삼칭이길,해저터널,월성정씨 부인의 이야기 등이 있다.온몸에 쪽빛이 물들 것만 같은 통영 앞바다의 푸르름과 시복과 구복을 안겨 주기 족한 먹거리,투박하지만 정겨움이 물씬 배어나는 통영 사투리,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흠씬 느껴볼 수 있는 통영은 꼭 가봐야만 성이 찰 것 같다.통영의 향기,냄새,맛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공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글로나마 통영의 속살을 훔쳐 볼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