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폐허
제스 월터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20여 미터 떠러진 곳에서 파스쿠알레 투르시는 여자의 도착을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아니 어쩌면,나중에 생각해 보면,그것은 꿈이라기 보다 오히려 한평생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대하는 소나기의 청명함이라 할 수 있었다. - 본문 -

 

 

나도 이러한 시절이 있었는가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되고,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현재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삶의 조각일 수도 있지만 위험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도 해본다.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과거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삶의 방향과 생존 방식이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면 시간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쉬이 잊혀져 가는 것이 일반인들의 사고일 것이다.설령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만난다해도 '만나지 말았어야 좋았을 걸'이라고 뒤늦게 가슴을 쓸어 내릴 수도 있다.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들은 진실한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그 기억과 추억을 함께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이십대에 만나 칠십대라는 인생의 황혼기에 진실된 친구로서 삶의 여생을 함께 할 수가 있다는 것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제스 월터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시.공간,등장인물 등이 다양하게 얽히고 섥혀 대서사적인 파노라마와 같이 도도하게 보여 주고 있어 무척 감동적이었다.이야기의 시작이 50여 년 전에서 시작하되 등장인물들이 연루되고 관계되는 역사적,개인적인 사건과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만의 디테일하고 만연적인 문체 등이 가미되어 마치 직조기의 날실을 기준으로 씨실을 엮어 가는 것과 같이 대충 읽어 내려가면 그 흐름을 놓칠 수도 있고 주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약간의)지루함도 없지는 않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성되는 사연과 감정은 단답형이 아닌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첫 장부터 끝까지 완독했다는 것이 장거리 마라톤을 완주한 런너에 비유하고 싶다.

 

 

1960년대 미국 <폭스사>에서 <클레오파트라>영화를 찍기 위해 안토니아 상대역인 클레오파트라역을 물색하던 중 주인공 디 모레이가 낙점되는데 크레오파트라역인 리처트 버튼과 디 모레이는 여차저차해서 아이를 갖게 된다.영화 홍보담당관인 마이클 딘은 영화 흥행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디 모레이에게는 '암'이라고 둘러대고 이탈리아의 휴양지 포르토 베르고냐로 그녀를 보내게 되면서 파스쿠알레와의 기적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파스쿠알레가 경영하는 에더퀴트 뷰 호텔에 그녀를 비롯하여 작가 엘비스 벤더,영화 홍보담당,자료 대독자,파스쿠알레의 이모,짐꾼 그외 조연에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하게 된다.한편 이야기의 정교함과 이해도를 고양시키기 위해 제2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무솔리니 지휘하에 참전과 지원을 하는 상황과 1846년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직전 백인이 원주민인 인디언을 학대하면서 추위와 절망과 함께 식인행위가 더해진다는 서사성이 더해져 시공간적인 배경지식을 더해 주었다.

 

 

한편 디 모레이는 팻을 낳고 미국 아이다호 샌드포인트에서 삶의 후반기를 보내면서 그의 아들과 며느리인 팻과 리디아에게 소극장 감독권을 넘겨 준다.부전자전이듯 아들 팻도 밴드와 공연 일에 전념을 하게 되는데 한때는 밴드 메니저를 잘못 만나 해외에서 술,마약,섹스로 삶을 방황과 시련을 겪기도 한다.파스쿠알레는 아리땁고 아름다웠던 20대의 디 모레이와 어머니의 진혼미사를 계기로 이별을 하고 그의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흰머리,주름살이 늘어만 가는 파스쿠알레에게는 그래도 디 모레이와의 한시절이 설렘과 환희로 가득 찼기에 그는 용기를 내어 디 모레이를 만나러 미국 땅을 밟고 극적인 해우를 하게 된다.아름다웠던 두 사람의 관계,추억,인생 이야기를 다큐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나이와 연륜만큼 그들간의 대화와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한 치의 앞도 장담할 수 없었던 이십대를 훌쩍 넘기고 칠십대가 된 그들에겐 아무런 방해요소와 장애물도 모두 걷히고 여생만큼은 그야말로 후회없는 아름다움만이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모든 일이 지금,이 순간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동시에,수천 개 방향으로,끝없이 일어난다.

이 모든 아름답고 부서져버린 인생들..., - 본문 -

 

 

고깃배 두 척 정도 간신히 오고 갈 정도의 벽촌 마을 포르토 베르고냐에서 우연과 같이 운명이 같이 만나 한 세대를 넘고 넘어 긴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둘의 마음 속에는 불같이 따오르는 뜨거운 사랑 못지 않게 남은 삶의 방향을 진주보다 더 귀하고 보석보다 더 영롱한 찬란한 대로가 그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사랑과 배신,기만과 소용돌이를 헤치고 파스쿠알레와 디 모레이는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행복의 세레나데 들려 주고 있다.인간이 만들어 가는 숙명과 존재 방식도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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