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불편을 팔다 - 세계 최대 라이프스타일 기업의 공습
뤼디거 융블루트 지음, 배인섭 옮김 / 미래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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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다국적 기업의 시대에 한국은 또 한 번의 파장이 일어날 것 같다.반제품 가구,소파 등의 가정생활 용품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뒤흔들리고 있는 이케아가 2014년 광명 KTX 역세권에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기사는 이미 나와 있어 이해관계자들에 따라서는 그 반응의 희비가 엇갈린다.질높은 반제품에 싼가격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소비자들이 매장을 방문하여 원하는 제품을 확인하여 집으로 가져 와서 반제품을 일일이 조립해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이를 기화로 한국의 중소업체들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타격과 파장이 크리라 예상된다.

 

이케아의 2012년 매출은 422억 달러에 달한다.미국의 홈디포,로우스에 이어 세계 3위의 가구업체이다.직원 수는 15만 4천 명에 이르며 2012년 매장 방문객은 무려 7억 7,600만 명이나 된다. - 본문 -

 

이케아(IKEA :잉바르 캄프라드의 이니셜 I.K와 엘름타리드의 이니셜 E,아군나리드의 이니셜 A가 합쳐진 것)는 잉바르 캄프라드 의해 설립되었는데,그는 천부적인 장사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즉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장사 품목이 되었다.허리띠,지갑,시계,연필 등이 담긴 상자 등을 매개로 그의 나이 19세에 스웨덴 스몰란드 벡시외에 위치한 삼림소유자협회 사무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급여의 반을 서류철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고,병영 대신 지점을 차려 1인 기업인으로 1943년 통신판매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나아가 잡화류,액자,장신구 등의 사업영역을 넓혀 가는데 초창기 배송할 창고는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잉바르 캄프라드가 직접 만든 최초의 이케아 창고

 

독일이 1950년대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스웨덴 역시 경제부흥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잉바르 캄프라드에게도 사업의 호기가 찾아 온다.1958년 이케아는 서랍장 '토레''를 구상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다.그런데 그는 사업에 미치다 보니 가정과 아내에게 신경을 덜 쓰다보니 이혼의 고배를 마시기도 하지만 나날이 번창하고 바빠진 카달로그,가구 전시장,주문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당시 공산국가였던 폴란드 등을 돌면서 사업의 외연성을 구상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하기도 했다.그리고 1965년 '왕의 굽이길'옆에 오픈한 이케아 가구 전시장은 소비자들의 해일(海溢)을 경험했는데 스웨덴 정부의 부가가치세 도입과 맞물려 이케아는 순풍에 돛을 단 셈이 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 스웨덴이 외국에 투자하는 것과 세법이 잉바르 캄프라드에게는 불만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사업처를 스위스와 독일로 넓혀 가게 된다.그는 정부의 지시보다는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설상가상으로 매우 높은 상속세 문제로 결국 캄프라드는 덴마크로 잠시 이주를 하게 되고 전기작가가 쓴 <어느 가구상인의 유언장>을 보면 "우리는 디자인이 아름답고 기능이 뛰어난 가구와 집기들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중략) 나이를 불문하고 젊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캄프라드는 젊은층과 트렌드를 고려하여 디자인과 가격 등에 집중하게 되는데 생산원가 대비 판매가를 고려한다면 스페어 파트는 노동력이 풍부한 저임금 국가에서 OEM방식을 수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가격을 맞추기 위해 임금이 낮은 인도,중국,베트남에 오다를 내리고 가구 및 잡화,액세서리 매장은 독일,미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영국,스웨덴,도미니카,중국,일본,대만,홍콩 등을 진출한 상태이다.낮은 가격,설명서를 보면서 조립하는 재미와 보람,매력적인 디자인이 이케아의 소비자들의 마음과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캄프라드는 현재 현역은 아니지만 뒤에서 모든 것을 구상하고 지휘하는 살아있는 존재이다.가구,잡화 분야를 떠나 금융,부동산,자산관리,보험,소매업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식들을 위한 기업체 이카노이고 그 본류는 이케아이다.세계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캄프라드는 기업의 주식공개도 싫어하는 한 편 세금 절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왔고,호화요트,축구팀 구매제의도 거절할 정도의 구두쇠이다. 1960년산 포르쉐 한 대와 프랑스에 아내와 함께 보낼 포도 농장이 그가 구매한 내력이라고 한다.장사,사업하는 사람은 근검,절약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캄프라드가 세계 전역으로 사업 확장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 개선과 산업적인 복지가로서 그 사명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회장을 통해 사업수완,도전성,선구자적인 기질,뚝심 등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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