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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한국 근대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녹두장군 전봉준이다.그의 삶은 짧고 굵었지만 역사에 남긴 가치와 교훈은 길이 남을 것이다.그가 태어나던 1855년 무렵 조대비가 왕조를 쥐락 펴락하고 탐관오리 및 부패관료들의 학정 그리고 조선을 개화하느냐 그대로 쇄국의 길을 걷느냐 등으로 갈팡질팡하던 시절이 이어지고 전봉준이 본격적으로 탐관오리,외세의 침입에 분연히 일어서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전창혁이 탐관오리의 대명사 조병갑에 의해 난장질에 의한 옥사가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글은 한울님을 믿는 동학교도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세력이 조선 전국을 강타하던 차,동학교도들은 하나 둘씩 제 갈 길을 가려고 민보군을 창설하는데 그들은 전봉준을 체포해 주는 댓가로 거액의 현상금을 걸게 하면서 시작된다.그는 휘하 부하였던 김경천의 지시에 따라 그의 몸을 피체(被逮)하여 발등과 정강이뼈를 못쓰게 만들어 놓는다.전봉준은 가마꾼,일본장교,이토 양아들과 함께 길고도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119일 간의 일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한승원작가의 쉼없는 스토리텔링과 서사적이고 개연성이 한데 어우러져 전봉준이라는 인물이 왜 위대하고 본보기가 되고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입에 재갈이 물리고 두 손과 두 다리는 포승줄에 결박된 채 순창 피로리를 떠나 담양,정읍,전주,우금치(牛禁峙),공산성,수원,한양에 이르게 된다.당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때가 한겨울이어서인지 추위와 상처로 인한 고통,전봉준을 이토히로부미의 양아들로 만들기 위한 이토의 회유가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어지는데 전봉준도 한 인간인지라 자신의 뜻을 저버리고 일본의 주구가 될 것인가를 놓고 잠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는 끝내 동학의 한울님을 모시고 자신으로 인해 죽어간 동학교도를 생각하고 탐관오리,변절한 갑신정변의 주역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는 지조와 절개를 끝까지 지켜 낸다.
사람은 늘 두 상반되는 의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는 존재이다.이 지점이 바로 사람과 귀신이 갈리는 관건이고,선과 악이 나뉘는 기미로서,사람의 마음에 도의 마음이 교전하고 의리가 이길지 욕망이 이길지 판결이 나는 때이다.사람이 이때 맹렬히 성찰하고 힘써 극복한다면 도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 정약용 <맹자요의> 중에서 -
그래도 전봉준이라는 인물의 장래성을 높이 평가하되 전봉준을 잘 활용하여 개인의 명예와 권력 뿐만 아니라 장차 조선식민지 활동에 가교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이토,천우협의 다나카,법무대신 서광범 등이 전봉준을 새삶을 살아야한다고 강권하지만 끝내 그의 생각을 되돌리지 못한다.그가 차가운 형장에서 망나니에 의해 참수가 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목이 베여 운종가 저자거리에 걸려지고 그 피는 만인의 가슴과 모든 탐관오리들의 가슴에 뿌려져야 한다고 시종일관 주장한다.
불혹의 나이에 일찍 삶을 마감했던 전봉준은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모든 백성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것을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시국은 그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그는 이토의 간곡하고 끈질기며 인간적인 면까지 내세워 그를 이토의 제2 양아들로 만들려 했던 회유작전은 반강제적이나마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법무아문의 결정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비록 그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고귀한 영혼과 넋,유지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는 계층들을 대변하고 있기에 갸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