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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 1 - 부익부 빈익빈 ㅣ 뱅크 1
김탁환 지음 / 살림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소설은 언제 읽어도 학습과 흥미라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가 있어 유익하기만 하다.또한 작가마다 개성과 문체가 다르기에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문체를 어느 정도 알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이러한 관점에서 김탁환작가의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기록을 바탕으로 서사적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는 점이 인상적이다.이전 작품이었던 <밀림 무정>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적 상황과 호랑이를 잡는 포수의 이야기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 은행이라는 '뱅크'는 구한말 밀려오는 외세에 어처구니 없이 무너졌던 조선의 무능과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진입해 왔던 일본의 자본세력이 조선의 시장과 자본,인력을 어떻게 잠식해 나갈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이보다 더 중요하고 비극적인 것은 일본이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정치적,군사적으로 조선을 할퀴고 삼키려 했던 점이 아닐까 한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메이지유신이 공고화 되면서 그들의 발판기지를 조선으로 정하게 되면서 부산을 비롯한 인천,원산항을 개방케 한다.그러면서 불평등 조약을 강화도 조약이 낳게 되고 일본의 자본세력이 하나 둘씩 조선의 자본과 인력을 착취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나아가 조선의 양반세력을 군사조직화 하는 것(임오군란)에 반발하고 조선은 어정쩡하게 제물포조약을 성사시키는데 일본은 이를 계기로 조선에 상권을 더욱 강화해 나갔던 것이다.당시 조선에는 객주를 비롯한 보부상을 중심으로 한 지역 거상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조직과 자금,인력,선진문물 앞에서 어떠한 상권을 형성하여 일본세력과 맞설 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890년대 제물포 해안가의 모습
은행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조선인 고객을 전당포에 소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은행보다 전당포의 금리가 훨씬 높기 때문에 이런 식의 돌려막기는 고객을 빚더미에 앉힐 수밖에 없지요.(조선인에게는)고난의 연속이었지.거머리에게 피 빨리듯 논밭과 재물을 몽땅 빼앗겼어.이자라도 내려고 전당포 두 곳에서 돈을 더 갖다 썼지.마지막 희망을 걸고 면포를 샀는데 그마저도 장대비를 맞아 못 쓰게 되었대.너무 힘들고 지쳐 아편까지 손을 댄 게지. - 본문 -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조선에는 3명의 거상들이 있었는데 개성의 장훈,인천의 서상진,한양의 홍도깨비였다.그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지만 결의형제를 맺으면서 상호보완적인 입장을 취해 나간다.장훈이 개성에 인삼밭을 크게 재배하지만 화재를 입으면서 화병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인천에서는 서상진이 상권을 쥐고 제물포 지역의 토착세력이 된다.그리고 인천에는 서양세력,일본세력이 진입하여 각종 상회,양행,호텔,은행 등이 들어 선다.한 편 제물포항에는 물밀듯이 들어 오는 외국화물로 노동자들의 하역작업을 두고 이권싸움이 벌어진다.이러한 와중에 젊은 청년 장철호와 박진태가 부두 하역 감독관을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데 처음에는 진태가 이겼지만 부두 창고가 소실되면서 그 책임을 묻고 서상진 등의 비호하에 철호가 인천 객주를 대표하여 감독권을 따낸다.
그리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 가는 점은 당시 남자들의 세계에서 홍일점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인향이다.인향은 인천 부사의 영애(令愛)로서 신문물을 받은 특수한 존재로 어여쁘면서도 당당하게 행동하던 신식여성이다.철호와 진태가 인향의 환심을 사기 위한 구애작전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기생으로 살아왔던 서운이와 철호의 14년 만의 해후 등이 이 글의 양념과 같은 맛깔스런 대목이다.
기울어 가던 구한말 조선의 조정은 개화파와 수구파가 있었다. 개화파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주장하는 온건 개화파와 적극 개화를 해야 한다던 혁신파가 있었지만 왕권과 관료들의 이합집산과 분열 등이 외세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것이다.이렇게 은행이라는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상권인 객주,보부상들은 설 자리를 잃어 가게 되고,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신난(辛難)한 생활은 동학혁명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한다.역사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해 나간다는 말을 새삼스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