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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저녁식사
벤 베네트 지음, 박병화 옮김 / 가치창조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글의 소재가 매우 특이하다.요리 레시피를 이용한 이야기가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이채롭기만 하다.벤 베네트 작가의 나라가 독일인데도 이야기의 배경이 도버 해협을 마주 보고 있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근처인 것도 이야기의 멋을 충분히 살리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던 주인공 자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뭇 궁금하기만 했다.
오십이 된 자크는 아내 엘리와 이십여 년을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그 간판은 천국이라는 의미의 파라다이스였다.사랑스러운 아내와 영원을 함께 약조한 자크는 그리 활달하지는 않지만 아내에게만큼은 변치 않은 사랑으로 대하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순정남과도 같았는데 불행하게도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레스토랑 '파라다이스'는 자크의 의욕상실로 인해 경영난이 악화되어 가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업 동반자이면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미혼남인 의사 친구 파트리스,변호사 친구 귀스타브는 자크가 혼자 되자 그와 자주 만나 위로와 격려를 하던 중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캐서린을 소개 받게 된다.캐서린은 기울어가는 레스토랑을 살리고 지분을 반반씩 나눠 갖게 되면서 자크는 캐서린과의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고 간판은 파리로 개명한다.자크는 아내를 여읜 홀아비이고 캐서린은 남편 크리스티앙과 이혼한 사이인지라 둘은 어떻게 보면 사업파트너이지만 잘만 엮이어 가면 연인 관계로도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크는 아내 엘리를 잃고 7년이 지난 싯점에서 엘리의 환상을 보게 된다.자크는 실제 엘리와 함께 했던 시절의 따뜻하고 달콤했던 순간들을 현실과 똑같이 재현을 하게 된다.특히 엘리가 남긴 비망록을 통해 요리 레시피를 읽으면서 회상에 잠기고 죽어서도 엘리를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생각에 무거운 분위기가 흘러 가는데,캐서린은 성격도 활당하면서 사교적인 면모까지 갖춘 여성으로 레스토랑 영업에 대해 혁명 같은 변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하나는 순진하면서 조용한 성격이고 하나는 활달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상호보완적인 면에서는 적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상 최고의 행복은 언제 맛보는가?
오붓한 식사를 하며 두 개의 진주를 발견할 때
하나는 어패류의 축축한 몸 속에서
또 하나는 훈훈한 저녁 햇살을 받으며
마주 랁은 식탁에서 - 오귀스트 디드로(Auguste Diderot) -
산속의 오두막과 같은 레스토랑이지만 자크는 생전 엘리와 푸르른 산과 들의 초목을 배경삼아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 하려는 낙조를 응시하면서 둘이 나누었을 오붓한 행복의 시간이 그에게는 결코 잊지 못했을 것이다.이 멋진 글을 접하면서 나는 이러한 시절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퍽 낭만적이고 꿈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업가,요가 강사인 캐서린은 낙관주의적 사고,미래지향적 사고,행복의 경계 안에서 자크와 인생을 다시 꾸리고 싶었던 것이 후반부에 잘 드러나고 있다.전(前)남편과 상처를 받은 캐서린에게 있어서는 순수하고 성실하기만 한 자크와 새삶을 시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매꾸는 것이고 행복의 나래를 펼쳐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사업 정신이 투철한 캐서린은 기울어 가던 레스토랑을 되살리고 자크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끌어 올려 밝고 멋진 인생을 펼쳐 가기로 한 것이다.우연찮게 찾아 온 캐서린 앞에 자크는 그토록 잊지 못할 엘리를 서서히 잊고 마법과도 같은 관계를 캐서린과 꿈같은 시간을 이어가지 않을까 한다.'비가 온 뒤 땅은 더욱 굳는다'는 말도 상처 입은 자크와 캐서린을 통해 새삼 느끼게 한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