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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일본인은 전세계적으로 알아 주는 축소지향적이다.아무리 크기와 규모가 방대한 것이라도 그것을 축소하여 자기 것으로 끌어 들이면서 음미하는 것을 즐긴다.이어령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큰 것을 작은 것으로 축소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안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자 그들만의 근성이 담겨져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물건을 만들더라도 꼼꼼하고 정교한 물건 만들기이다.그것에는 장인(匠人)정신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하나의 물건이 탄생하기까지 기나긴 시간과 세월과 함께 추종불허할 정도의 정교하고 탄력있으며 찬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이다.

먼저 고단샤출간 <일본어대사전>을 소개하고 싶다.이 사전은 대학졸업 기녕으로 구입한 것인데 어느덧 이십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새것과 같이 튼실하기만 다.17,500여개의 단어가 빼곡하게 실려 있으며 단어,인명,지명 등이 너무도 정교하고 일본어 학습 및 번역할 때 내게는 없어서는 안될 학습도구이다.일본어를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학창시절의 공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일본과 관련된 작품은 관심을 갖고 읽어 가고 있다.
이번 작품이 사전편집과 관련하다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사진편집을 위해 몇 십 년의 공을 들이는 편집부 직원들의 노고와 유관부서와의 긴밀한 협력,사어가 되다시피한 고어에 대한 전문인에게 의뢰,선전광고 등이 오래된 건물 속의 비좁은 공간에서 숨가쁘게 돌아간다.그 주인공이 바로 마지메이다.고학력으로 출판사 영업부에서 캐리어를 쌓던 중 그의 일솜씨와 성실함,박학다식함에 사전편집부로 스카웃되지만 사전편집이라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기존 선배직원들과의 보이지 않는 알력과 선배사원들이 마지메를 대하는 시샘과 질투가 엿보이지만 마지메 특유의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성실한 태도,사전 만들기에 적재인 재능은 총지휘격인 아라키와 마쓰모토의 총애를 받기에 충분하다.
또한 결혼 적령기에 이른 마지메는 하숙집 주인의 손녀이고 요리사인 가구야와 가까워지면서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도 재미와 흥미를 안겨 주기에 족하다.사전편집부가 결정한 사전명은 <대도해:大渡海>로서 마지메가 편집부로 오기 전까지 사전 만들기에 공을 들인 시간이 십 년이 넘어가고 마지막 단계로서 마지메의 위상은 일개 사원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운 존재이다.한편 가구야씨와 가까워지면서 사내에선 가구야씨와 사귄다는 염문이 파다하면서 가끔은 회식장소를 가구씨가 운영하는 요리집으로 정하기도 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깊어만 간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망망대해를 건너기 위한 배를 엮는다는 발상이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미우라시온작가는 젊은 신예로서 사전편집이라는 글을 쓰기는 했지만 일본 서점계를 강타하고 영화로 각색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킬 줄을 몰랐다고 한다.사전편집을 위해 방대한 인력을 동원하면서 잘못된 용례가 나올까봐 몇 날을 합숙에 몰입하기도 하는 사전편집부의 작업과정과 직원들의 합심협력은 그 자체로 장인의 솜씨이고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불행하게도 사전편집 총지휘자인 마쓰모토는 암으로 <대도해>의 탄생을 보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된다.마지메는 총각딱지도 떼고 능력도 인정받아 새로운 사전 만들기에 한차원 높은 경지로 오를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일과 사랑이 잘 배합된 훈훈한 감동을 안겨 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