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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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또래나 그 연령과 비슷한 칠십대 노인들을 만나 얘기를 듣다 보면 지난 세월 사연 밖으로 드러내 놓치 못했던 사연들이 많은 거 같다.엊그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가다 1층에서 만난 청소부 아주머니는 올해 75세인데 매우 정정하게 일하고 늘 바지런하다.서로 인사를 나눈 뒤 내가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자식들 다 장성하여 자식들이 경제적 도움을 줄 텐데 뭐하러 힘드시게 일을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할머니 하는 말씀이 "나는 삼십대에 혼자 되어 자식들을 키워 놯더니 이젠 며느리가 나와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하고 아들,딸들도 힘들게 사니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는 움직이면서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소?"라고 속을 털어 놓으며 한숨을 푹 쉬신다.그말 따라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게요"라고 하면서 내 일 보러 총총걸음을 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오면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시대가 바뀌고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편리함과 개인주의로 치달으면서 노인들은 홀로 되는 경우가 많다.자식과 남편,가정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다시피 살아 온 할머니들의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사연들을 접하다 보면 가끔 신경숙작가의 문체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우리네의 생활의 모습을 잘 반죽하되 잔잔하면서도 속깊은 정취가 배어 나오는 것이 내가 신경숙작가의 작품을 읽고 느끼는 바이다.작가의 성장과정,고향의 부모님의 온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전해 주는 점도 내게는 친근감이 일고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스물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들에서 크게 벗어나는 커다란 반향은 없다고 본다.작가가 살아 온 날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단상들이 해학적인 유머와 웃음거리가 가미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즉 재치있는 문답 형식은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밤하늘에 휘영청 떠오르는 달님을 바라보면서 신경숙작가는 초승달,반달,보름달,그믐달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젊은 목사가 스님을 교회로 전도하려는 이야기,시골 할머니의 상경 이야기,부모는 자식의 뜻과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혼이 일상 다반사가 되어 버린 이야기,처남,매부간의 코딱지 이야기.수술을 하고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한 어머니가 농사일 걱정하는 이야기,봄비 오는 날 한 할머니의 웃지 못할 이야기 등이 잔잔하게 흘러 간다.그래도 삶은 이어가야 하기에 고통과 상처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인간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사는 법을 배우고 터득해 나가야 하는 존재가 아닐런지...

 

걷다보면 지금보다는 지난 일들이 투명하게 되비쳐오는 때가 잦아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쉬곤 하지.바람은 거울인지도 모르겠어.어떻게 그걸 이겨내고 이 시간으로 오게 되었을까 싶은 일도 그냥 담담하게 떠오르곤 해.(중략)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이젠 생각이 과거를 지나 현재를 지나 미래로 뻗어나가지. -본문-

 

작가는 내밀한 얘기를 잘 아는 사람에게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 것처럼 나 역시 말 못할 사연이 있기는 있다.자존심,자격지심,치부,트라우마 등을 친소관계를 떠나 말못할 경우가 있다.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 속이 문드러지도록 담아 두는 것은 정신건강,신체건강에 좋지 않다.사람에게 말못한다면 작가와 같이 어떠한 사물,대상을 정하여 내밀한 부분을 말하고 끝이 없는 삶을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모처럼 폭소,미소,애잔함,해학,근기(根氣)가 잘 조화되어 봄날의 무료함을 기대이상으로 달래준 시간이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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