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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문학으로서 삶
알렉산더 네하마스 지음, 김종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평점 :

19세기 후반 실존주의를 내걸어 실존주의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던 니체의 거대한 철학 사상을 문학적인 삶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이 도서를 접하면서 니체의 철학과 예술을 토대로 문학적인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그가 주장하는 이론적이면서 독특한 사상들은 19세기 후반 '시대의 이단아'로 불린 만큼 독창적이고 기발한 사유물이 많았다.또한 그가 주된 사상인 권력의지와 초인이라는 개념이 나치즘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체를 이해하려면 우선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하나는 권력의지,영겁회귀,자아의 본질 및 도덕의 비도덕적 기원과 같은 관점이고 또 하나는 니체의 텍스트 자체에서 야기되는 모순들이다. -본문 -
니체는 이러한 개념들을 원근법주의에 입각하여 해석하려고 했다.이것은 그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 중의 하나였지만 자체 내에 모순을 안고 있었기에 그 정당성은 늘 내부로부터 도전받고 있었으며,원근법주의는 이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대상이기도 하다.이러한 이해의 가능성들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 불가능해보이고 그의 텍스트의 위상도 도덕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것은 진리로 여겨졌던 현상들을 재해석한 결과이기도 하기에 니체가 펼친 개념과 텍스트에는 학자 및 연구자들에 의해 의견의 갈등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니체가 짧은 기간 창조적이었던 저술 가운데 경구나 은유,단편을 비롯하여 여러 스타일과 장르를 자유로이 구사했다.이 글에 실린 그의 주요 저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유쾌한 과학>,<선악을 넘어서><우상의 황혼>,<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인데 경구적인 성향이 강하고 <권력의지>는 경구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과학이 과정과 실험을 거쳐 이루어진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종교적 기만을 부도덕한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도덕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는 도덕과 부도덕을 행동의 동기에서 찾으며,도덕이 개별적 행위자에게 강요하는 의무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니체의 저술의 목표가 소크라테스의 목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종류로 여겨진다.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다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난다.소크라테스는 일상을 끊임없이 토론의 대상으로 삼고 오늘날 철학이 다루고 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데 반해 니체는 추상적(관념적)이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독자에게 던져 독자의 삶에 즉각 영향을 주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특히 그가 다루는 해석은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니체는 세계를 다양한 관습과 삶의 방식에 따라 해석하는 텍스트로 생각하였다.즉 진리라는 개념을 버리고 텍스트라는 은유를 사용했는데,텍스트는 해석이 가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의미는 해석을 통하여 창조된다고 보았다.그런 점에서 텍스트에 가해진 해석은 과연 정확하고 옳은 것인가를 증명하고 판단할 기준이 있는 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해석 위에 재해석이 가해지다 보니 본의가 전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기독교적 도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태도 및 입장을 취했다.그러한 태도와 입장이 <계보학>을 비롯하여 후기 저서의 핵심이었는데,교회는 늘 관능성과 자만심.지배욕,탐욕,복수성 등을 제거하도록 강요해 왔기 때문으로 보여진다.정념의 뿌리를 비난하는 것은 삶의 뿌리를 비난하는 것이고 교회가 하는 일은 삶에 적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생명의 일부를 제거하려는 기독교의 모순된 행태에 반발하고 전도된 세계관을 모두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나아가 진리와 거짓이라는 문제도 거론했는데 진리가 거짓일 수도 있고 거짓이 진리일 수도 있다고도 보았다.나아가 니체가 교리적 절대주의를 비판한 주된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행동 원칙을 강요했기 때문이며,도덕은 모든 사람이 준수해야 하는 행동 규범을 지향해야 하며,도덕은 모든 사람이 쉽게 따를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하고 공통적인 요소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그가 말하는 도덕이 허용하는 유일한 행동은 사회의 가장 허약한 구성원을 이익을 위한 것으로 바라 보았다.
일부에선 그의 도덕관이 진부하고 모호하며 진리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충돌하고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그가 기존의 도덕을 새로운 행동의 규범으로 대체하기를 원치 않았다면 상기와 같은 비판을 효력을 상실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그가 행동 규범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긍정적인 모습의 도덕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도 않았다.그의 주요 목표는 도덕적 전통을 흔들고 약화시키려는 데에 있었다.
모두에서도 말했듯이 니체는 이상적인 인물의 모델을 문학 작품의 등장인물에게서 찾으려 했고,또한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훌륭한 이야기에서 찾았다는 점이다.이는 그의 한계일 수도있지만 니체가 삶의 미학적이며 구성적인 성격을 강조했기에 그의 정당성은 약화되지는 않는다고 네하마스저자는 말한다.특히 <도덕의 계보학>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삶의 가치와 스타일을 결정하는 권력의지가 표현되는 것도 작중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우리는 따로 떼어놓고 봐야 한다.예술가를 작품처럼 심각하게 취급하면 안 된다.예술가는 어차피 작품을 위한 조건,모태,토양,작품을 살찌우는 퇴비나 비료 등에 불과하지 않은가.따라서 작품을 즐기고 싶으면 예술가를 잊어야 한다."
끝으로 니체는 인간의 목표는 인간의 최종적 목적이 아니라 유대한 모범 즉 역사상 위대했던 개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했고 <권력의지>에서 "목표는 없다.목표는 개인이어야 한다"고 했다.그가 권하는 도덕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그의 도덕관이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그의 열정적인 자기 성찰은 자기 창조의 충돌과 결합되어 낭만주의자 및 최초의 모더니스트였으며 경이로운 인물임에 틀림없다.그가 남긴 문학으로의 삶은 성찰과 창조의 톱니바퀴를 잘 활용하였지만 아직도 그가 남긴 개념과 텍스트에는 갈등과 충돌,재해석되어야 할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