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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즈음과 같이 스펙,스토리텔링에 신경을 써야 취업에 도움이 되는 예비사회인 및 생존과 먹고 살기에 급급한 시대에 중국 고대 철학사상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입신 출세주의와 명예,권력이 우선이고 존중받는 세태이다 보니 대부분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 문제에만 급급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나아가 서구 문물이 사회전반에 깊숙이 천착을 하고 첨단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고대 동양철학 등은 도외시하는 편이다.나 역시 현실적으로 가슴에 와닿지 않는 면이 있어서인지 이와 관련한 도서를 거의 읽지를 못했다.일종의 정신수양이 덜 되어서인지 사람과 세상,사물을 보는 안목도 좁기만 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장자에 관한 지식은 일천하다.다만 이 글을 읽어 가면서 느끼는 점은 장자 2,000여 년 전에 쓴 <내편>과 그 제자들이 쓴 <외편>의 내용들이 오늘날 살아 가는 현대인의 생각과 사유를 뛰어 넘는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이 담긴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가 남긴 논리와 문장은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듯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저자 왕멍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장자가 말하는 근본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에 준하여 세상을 살아 가되 너무 지나치면 아니한 만도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중용 정신도 내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유가의 사상인 인의예지,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비롯하여 노자의 자연과 일체하는 무위사상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장자의 논리이고 주장이다.인간의 본성은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데 사회환경이 인간을 교화시키고 욕망과 탐욕을 부추긴다는 것이다.도와 덕을 아무리 강조하고 계몽을 하더라도 당사자가 자신의 작은 이익을 탐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인의도덕은 사라지고 부도덕과 반도덕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나아가 대다수 국민들은 공직에 있는 이들이 이러한 부도덕하고 반도덕적인 행위를 일삼게 된다면 과연 위정자를 따르겠는가.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국민들 마음 속에는 인의도덕은 장롱 속에 집어 넣어야 하고 머리와 손에는 편법과 줄타기라는 수단.도구만이 있을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는 돈과 물질이 우선이다 보니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겉으로는 사회정의 구현을 외치지만 비슷한 부류,계층끼리 어울려 그들만의 세상,집단,교조,이념을 만들어 간다.한 쪽은 돈과 물질,권력의 혜택을 톡톡이 받는 수혜자라면 한 쪽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차별,경쟁,위선,음모,절도,왜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자신이 갖고 있는 내면의 착한 본성인 양심과 꼭 지켜야 할 도덕률도 차츰 떨어지면서 사회악은 점차 커져만 가는 것이다.
특히 장자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물건만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닌 정신,이념,개념,부호,토템,칭호 그리고 나아가 도리와 가르침까지도 모두 훔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이러한 사상과 이념,이데올로기를 만든 이는 단연 성인이다.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답고 완벽에 가깝더라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이러한 약간의 틈을 악이용하여 민족 감정,민족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파시즘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이 글의 내용이 2천 년 전에 성인이나 권력자,이른바 주류 계층만이 도덕과 인의예지신,진선미를 논하고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도둑에게도 도둑 나름대로의 도와 인의,지혜와 용기가 있다는 것을 장자는 말해 주고 있다.그 대표적인 도둑이 조정의 부패에 맞서고 백성들의 편에 섰던 양산박이다.
장자는 인간의 현실적인 처세방법 등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인간의 지혜아 과학기술이 자연계와 인류 사회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그런데 유가사상에 깊이 젖어 있는 중국인들의 문화습성 및 성향상 과학경시 풍조를 낳고 이는 중국문명의 후퇴를 가져 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며,한국도 중국의 유가사상,성리학 사상 등이 개화,문명발전을 더디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가 생각한다.
장자는 자신의 몸과 명예,존엄을 지키려면 위기가 닥쳤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가 있어야 하고 시비와 무의미한 논쟁,추악한 싸움에서 발을 빼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화를 자초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리고 염담무위(恬淡無爲) 즉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무위의 상태를 의미하는데,이것은 일의 리듬을 조절하고 보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휴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예측 불가능한 재앙을 미리 예방할 수 있게 해주며,나아감과 물러남,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게 해주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도덕과 윤리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경제적 이득과 너무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면 일반인들의 뇌리와 시선은 이 문제에 대해 흐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다만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도덕과 윤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장자의 내편과 외편 중에 오늘날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요소,문제,상황과 잘 접목시키고 해박하게 해설해 주고 있는 왕멍저자의 풍부한 식견은 대학자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