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의 기억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3월
평점 :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통해 전민식작가를 알게 되었다.일정한 직업이 없는 청년백수가 개를 산책시키면서 생계를 꾸려 가는 애달픈 이야기였다.작가 또한 그 작품을 통해 '2012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길고도 어두컴컴한 터널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신산스러운 글쓰기 작업이 이 영예로운 상을 통해 작가는 그간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한 구실을 이제야 풀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기에 나 또한 감동적인 장면이고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이번 두 번째 대작 <불의 기억>은 작가의 작품이 한층 더 성숙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글에는 다양한 소재가 존재하게 되는데 소재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길을 나서 걸으면서 바람과 공기,산과 내,사람과 건물들을 주의 깊게 보고 느끼면서 오래도록 잊혀져 머리 속에서 소실되어 버린 것들을 순간적인 영감과 감흥에 의해 작가는 '바로 이거야'라고 심산의 심마니를 캐내는 쾌거를 맛보는 순간이 얼마나 전율스럽고 짜릿한 흥분을 안겨 줄 것인가.글쓰는 작가만이 느끼는 고유의 체험이 아닐까 싶다.전민식작가는 <불의 기억>을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동료와 지나치다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들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주인공 동주와 혜원 그리고 동주 아버지 한위,혜원 어머니 정화,규철이 나오고 있다.또한 공간적 배경은 종(鐘)을 만드는 용해로 현장,폐차장이 주가 되고 금형리와 월롱이라는 장소가 교차적으로 나온다.그리고 시간적 배경은 '2002 월드컵 축제 무렵이 되고 있다.
종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규철과 한위 이 둘은 죽마고우일지도 모르는데 이 둘은 종을 만드는 기법에서부터 의견 차이가 있다.규철은 종은 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한위는 철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그리고 주철의 아내 정화는 번연하게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위와의 애틋한 관계가 지속되는데 규철이 만든 밀랍형 종이 월드컵장으로 옮기려는 도중에 박살이 나면서 아내 정화와의 관계도 악화되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나머지 그는 아내 정화를 목졸라 죽인다.아내를 죽인 기억은 필름이 끊긴 상태라서 그런지 나지를 않고 그 아내를 죽인 범인을 친구 한위로 몰아가게 된다.
한 편 동주와 가깝게 지내던 혜원마저 실종이 되고 종을 만들어 먹고 살아왔던 금형리를 떠나 월롱으로 터전을 잡아 가게 되는데 감옥으로 간 주철장 규철이 부재중이라 한위,동주 등은 폐차장에서 일거리를 찾아 생계를 꾸려 가게 된다.동주의 아버지 한위는 살아 생전 정화를 둘도 없이 아끼고 사랑했던 터라 그녀의 딸 혜원을 찾으려 백방을 수소문한다.사랑했던 마음 속의 연인에게 못다한 회한을 혜원에게 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그리고 규철은 살인죄로 15년의 형을 살아야하지만 감형으로 10년 만에 출소하면서 새롭게 종 제조에 몰두한다.마치 신이 내린 예술가의 관록과 심성을 갖은 것처럼 독특한 자기만의 종 만들기를 시도하지만 규철은 혜원이 실종되고 혜원이 남긴 일기장이 없어진 것을 동주와 고아원 출신인 화진에게 몰아가고 정화를 죽인 것도 자신이 아니라면서 한위를 힘껏 밀어 붙인다.
봉덕사에 안치된 성덕대왕 신종의 비록(秘錄)을 찾아낸 규철은 흥분의 도가니로 가득하다.그것은 춘추 무열왕에서 법민 문문황,종 주조 실험 - 박향이라고 적혀 잇는데 마흔 번째 실험까지 기록되어 있다.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몸 시주자가 등장하고 있는데,규철은 종 만들기의 희생양을 동주와 화진이로 삼으려 하는 찰나 한위가 용해로에 등장하면서 둘은 광기어린 실갱이를 벌이다 쇳물이 이글거리는 용해로 속으로 빠지면서 종의 화신으로 변한다.그것을 곧이 믿으려는 주철장 규철의 광기어린 맹신과 자신의 아내를 죽인 자신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사이코 기질이 과연 종을 만드는 자로서 예술가적인 자질이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종 만들기를 통해 주철장들의 각고의 노력과 신비스러운 체험 등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자주 등장하지 않은 종 만들기라는 소재는 관심밖이었지만 한국의 전통의 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갖게 되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고 규철과 같은 인물을 통해 과연 예술이라는 본령은 어디에 있는가도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