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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2월
평점 :

일본 속담에 '여행은 길동무와 함께,세상살이는 인정으로'라는 말이 있다.자로 잰듯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 살 수가 없는 법이다.지금이 행복하든 과거의 한 시절이 행복했든 행복한 순간을 머리 속에 떠올리다 보면 잠시만이라도 그늘진 마음의 체증을 가라앉힐 수가 있으며 기억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 짜릿한 전율감을 느끼게 했던 시간을 현재 상태로 그려볼 수만 있다면 저절로 미소와 환희가 만면에 붉어 오르리라.
결혼전 나는 일본 지인의 초청으로 교토에 놀러간 적이 있다.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여행적금을 마련하는 셈으로 매달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가면서 일본 친구집에 3~4일 머물렀던 것이다.숙박비가 들지 않아 경비부담이 덜해 몸과 마음도 한결 가뿐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친구의 부모님,여동생,친구 모두가 내식구마냥 반겨주고 환대를 해 주었다.친구는 공무원인 관계로 귀가하고 난 뒤부터 나와 친밀감을 쌓아 갔고 낮엔 부모님들도 바빠서 신경을 써 줄 겨를이 없었던 터라 재일교포였던 미스강을 교토 이모저모를 안내해 주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미스강은 한국어는 서툴러도 꽤나 정숙하고 친절했다.일본 체제기간 중 불편한 점이 없도록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배려하는 기운이 역력했다.절과 쇼핑가,식당 등을 돌면서도 피곤한 내색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미덕,센스에 눈물겨운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고마움을 댓가로 감사의 말과 약소하지만 1만엔을 답례로 봉투에 담아 건네 주었다.돈이 많았더라면 더 주어야 마땅하데 그러지를 못해 아쉽고 미안하기만 하다.지금도 가끔 앨범 속에 미스강과가 오붓하게 길동무 역할을 해주었던 지난 시절의 풋풋한 모습,정겨운 한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아마 그녀도 지금은 사십대 중반을 넘은 중년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 작품은 소소한 일상 속에 잊혀질 사연,순간들을 카메라 렌즈에 잘 포착해 그려 놓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이야기가 박진감과 스릴감이 있는 장르문학이 아닌 순수한 사랑의 속삭임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소재도 매우 친숙하기만 하다.어린 시절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뭔가를 갈구하는 소원,사라진 자전거 이야기,모던 타임스,화성과 금성을 그린 남과 여,작은 사랑의 멜로디,춤추는 뉴욕,동경화(東京畵) 등을 그리고 있다.또한 짧은 글 뒤에는 작가가 인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세계 각도시를 수필식으로 그리고 있다.(방콕,루앙프라방,오슬로,타이베이,호치민,스위스) 그 어느 소재도 깃털보다는 무겁지만 쇠뭉치보다는 가벼운 삶의 여정에 나타날 법한 이야기들이다.누군가를 만났기에 현재의 행복이 있을테고 누군가를 만나 불행의 늪에 빠졌다고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사람 사귀고 사람 다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세월과 경험을 말해 주리라.
이 하늘이 어떤 하늘인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이 하늘과 같은 색으로 웃는 사람을. - 본문 -
이 얼마나 순수하고 담백하고 청징한 말인가? 물질에 절대적 지배를 받고 사는 삶 속에는 수평선 저 멀리 붉게 노을지는 낙조의 자태와 새파란 하늘과 같이 한 점 구김살 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 것도 자아내게 하는 것도 언제적 일이련가.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예상치도 않은 갖가지 불편함에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내가 먼저 진실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친구로 삼으려는 용기와 대담함도 여행지에는 필요할 것이다.ANA 기내에 연재잡지로 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탄생된 이 글은 지난 시절의 순수했던 그리운 친구,애인이 생각이 나게도 하고 잃어 버린 순수를 되찾아 가는 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