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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사람을 말하다 - 인생의 지혜를 담은 고전 강의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현대인들이 지식과 경험을 쌓아 가는 루트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걸러지지 않는 포털 사이트 뉴스나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얻는 것들이 많다고 본다.이러한 단편적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뉴스들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으로 비춰지기에 타인과의 정보,지식 공유 사이에는 오류와 문제 발생의 소지도 많다.특히 조급하고 빨리 해치우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에겐 느긋하게 생각하고 사유를 하는 것보다는 신경을 자극하고 즐거움과 기쁨을 순간적으로 맛보는 것들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깊은 사유와 통찰력의 반복에 의해 거듭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특히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인생의 방향을 도인(導引)하는 차원에서 매우 소중하고 귀중한 보물과도 같다.동양의 고전,서양의 철학 등이 있었기에 인류의 문명 발전과 삶의 방향이 진보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근래 인문학적 사고와 사유를 요하고 그러한 분위기가 독서계에서 일어나다 보니 고전과 철학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고 있다.흔히 문사철(文史哲)이라고 하는 인문학 분야는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의 구미를 크게 자극하지는 않는다.다소 진부하고 재미가 없으며 돈이 되지 않는 속세적인 근성이 문사철 분야에 호감을 주지 않는 것 같다.나 역시 독서를 즐기지 않던 시절에는 겨우 자기계발서나 외국어 관련 도서 정도가 고작이었다.요근래에는 인생의 깊이와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도서를 선호하고 즐겨 읽으려 한다.
중국의 인문학 분야의 석학인 이중톈(易中天)이 중국 CCTV에서 『중국의 지혜』를 주제로 여섯 번의 강연 원고를 정리한 번역본이 바로 이 글이다.이 글 속에는 시장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서 중국인들의 생각과 사고가 물질숭배라는 편협한 방향으로 흐르기에 이를 계도하고,유구한 역사와 문화,철학을 갖고 있는 중화민족사상을 고취,함양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지 않는가 싶다.
이 글에는 중국의 유가 경전인 <주역>과 <중용>,도가와 병가의 경전인 <노자>와 <손자병법>,그리고 위진남북조시대의 지식인들과 선종(禪宗) 조사(祖師)의 일화가 잘 담겨져 있다.이러한 경전,지혜,도덕,종교 등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초심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어 읽는 묘미가 있다.또한 저자는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 자신에게 '세상의 이치,사람 이해,인생의 방향'등을 질문하고 답해 보기를 바라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맹자가 말한 중용이다.『맹자.진심(盡心).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난하자니 예로 들 것이 없고,꾸짖자니 꼬투리 삼을 만한 것이 없다.세상의 풍속과 동조하고 더러운 세속에 합류하니,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성실하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행동하는 것을 보면 청렴하고 결백한 것처럼 보인다.그래서 뭇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고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중국에서 문혁(문화대혁명)후기 '평법비유(評法批儒)'운동이 있었는데 법가사상을 찬성하고 유가사상을 비판한다는 것이다.법가가 투쟁의 철학이라면 유가는 조화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유가사상이 법가사상과 대립하기 때문에 유가의 중용은 아무런 죄도 없이 누명을 뒤집어 쓴 셈이 되고 만 것이다.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은 귀찮고 시끄럽고 시시비비에 휘말릴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그저 되는대로 처리하고 아무런 원칙도 없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으려는 제3자의 입장이 강하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논어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불역낙호(學而時習之,不亦樂乎,배우고 때론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부분을 좋게 생각한다.삶은 늘 변화하고 진보해 나간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식이 홍수처럼 넘쳐 난다.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심오한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쉼없이 배우고 되새김질 해야 한다.그 속에서 자신만의 인문(人紋)이 탄생되지 않을까 한다.그것은 정신적인 보고이고 유산이 될 수도 있다.중국의 인문석학 이중톈을 통해 사람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물어 보고 대답하는 연습을 한 셈이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