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 푸어'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비정규직,파트 타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정규직과는 천양지차의 조건과 대우를 받고 있다.일의 강도 및 업무량 면에서 거의가 정규직보다 더 셀 뿐더러 과외로 궂은 일도 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여건에 놓여 있는 것이 실정이다.이렇게 비정규직,파트 타임이 계속 양산되는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높아진 경제력에 비추어 볼 때 정규직에 들어 갈 고비용을 비정규직 및 파트 타임으로 충당하려는 속셈이 짙다는 것을 통감한다.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일은 없다.정해진 사규,조직에 소리 안나게 성실하고 인간성 좋으며 순응하는 자세로 근무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기업의 풍토나 인력 관리 등이 정규직 위주로 되어 있고 비정규직은 빗나가는 근태나 효율성,수익성 면에서 적신호가 켜지면 언제든 해고 1순위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정규직 역시 근태,생산성,인간 관계 잘 챙겨야 하고 개인의 생활은 거의 누릴 수가 없고 조직 생활에 적극 충성을 하면서 자기계발에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인의 단면도가 아닐까 한다.
오래 된 일이지만 군제대 후 복학하기 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지방도시에서 배관 나르는 일과 시립 도서관 잔디깔기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다.이 두가지 일 모두가 2인 1조가 되어 하는 것이었는데 배관 나르는 일은 상대적으로 육체적인 노동이라 체력이 요구되고 보조를 맞춰 흔들거리는 철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옮긴다.그리고 용접공이 지시하는 곳으로 옮겨 놓으면 되는데,순간의 방심으로 배관과 배관 사이에 기울어져 지나가던 행인의 머리를 '꽈당'부딪힐 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그 경험이 있은 뒤로는 안전사고 만큼은 몸에 배여 전후,좌우,상하의 공간을 신경쓰는 버릇이 생겼다.그리고 잔디깔기는 체력이 크게 소모되지는 않았지만 일을 감독하는 십장의 잔소리 이를테면 "꾸물거리지 말고 하루 계획에 차질없도록 하라"는 종용이 끊이질 않았다.이 두 가지 노가다(막노동일)는 살아 가면서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번듯한 직장 구하기는 이제는 어렵게 된 세상이다.스텍,스토리텔링 모두 갖춰져 있어도 '나는 놈 위에 기는 놈 있다'는 말처럼 나보다 실력도 많고 배경도 좋은 사람이 많기에 쉽게 원하는 직장에 들어 가기가 힘들다.반면 3D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곳은 어디에든 있겠지만 그러한 곳에는 눈에 들어 오지 않는 것이 젊은이들의 사고인 것 같다.어느 곳이든 편한 자리가 어디에 있겠냐마는 근무 여건이 열악한 곳은 일은 고되고 대우는 상상이하이기에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래서인지 근무환경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곳은 어디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고,그들 또한 노동자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산업계가 안고 있는 실정이고 치부가 아닐까 한다.
이 글의 한승태저자는 삼십을 바라보는 열혈 청년이다.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글에 소개된 사회 생활은 가장 하기 싫고 가고 싶지 않는 곳만을 몸으로 눈치로 다 겪어 본 것 같다.근무 환경과 여건,대우가 조폭 세계와 같다는 선원 생활을 비롯하여 24시간 편의점 및 주유소 알바,돼지 농장(조경수 일 포함)에서의 돼지 키우기,농촌의 비닐 하우스 일,자동차 부품 공장 등의 일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들려 주고 있다.그 실상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와서 마치 르포르타쥬를 보는 듯 했다.험악한 욕설과 육두 문자는 기본이고 마치 군대의 고참이 신참을 다루는 듯한 언행이 섬뜩하기만 하다.시급 4,580(2013년 기준)을 놓고 설왕설래를 하게 되는데,공통점은 누군가의 소개나 소개소를 거쳐 들어 간 것이다.
꽃개잡이의 선주의 악덕 행위가 가장 비위에 거슬리고 편의점과 주유소는 그래도 접객 업무이다보니 손님에게 최선의 서비스 정신을 보여 주어야 함을 저자는 알고 있지만 소비자(고객)의 거드름피우는 언행도 소비자 의식이 낮다는 반증이다.돼지 농장에서는 종부사부터 비육사를 왔다 갔다 하는데 쓸고 닦아도 늘 쌓여만 가는 돼지들의 똥과 오줌 등의 악취에 구태의연한 상하관계,가난하게 살지만 인간의 따뜻한 정을 갖고 살아가는 비닐 하우스 주인,한 시도 딴 생각을 할 수 없는 긴장감과 정밀성을 요구하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소개하고 있다.낮은 시급에 휴일도 월 2회 정도로 근무시간은 열 시간을 넘기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피 떨고 포 떨면 손에 들어 오는 돈은 월 100만원도 안되는 근무지를 전전하면서 그가 느끼는 것은 사회가 이만큼 돌아가는 이유가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제도와 체제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요근래에는 부자는 계속 부자로 살고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한 자로 살 것만 같은 사회 구조가 겨울날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같이 파르를 떨고 있는 모습이고 자화상이다.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 최소한 먹고 살 만큼의 생계를 지원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있는 사람 위주이고 힘없는 자는 죽지 못해 억지로 살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사회가 소외된 계층을 보듬어 안고 부를 분배하여 상생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이 틀 텐데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이분법적 사회 구조가 슬프기만 하다.재치있고 유머 넘치면서 현장감을 그대로 재현한 저자의 워킹 푸어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만 할 커다란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