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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자 몽테뉴의 12가지 고민들
솔 프램튼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인문 관련 도서를 읽다 보면 글의 구성이 탄탄하고 내용이 오밀조밀하게 엮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또한 인용문이 곁들어져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 독자는 이를 통하여 글의 행간의 의미와 전체적인 내용을 수용하고 통합해 가면서 지성인의 힘을 배양해 간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인문 관련 도서가 역사적인 배경이 깔려 있는 경우라면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시대 상황,제도와 시스템까지도 미리 파악하고 읽어 내려 간다면 읽는 재미와 독서효율성도 제고될 거라 생각한다.
유럽은 중세 그리스 스토아 학파 및 영주를 기간으로 하는 봉건제 및 로마 카톨릭 교의가 르네상스 시대에도 이어지게 되는데,16세기 프랑스는 신구교 간의 갈등과 내전,불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랄리스트로서 자신의 삶의 바탕을 근간으로 다양한 경험을 고백하고 있는 몽테뉴의 자서전격인 에쎄(Essais)는 한국에서는 수상록(隨想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가 살았던 16세기 중.후반기에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카톨릭과의 갈등과 내전이 깊게 골이 패이면서 그는 신구교의 교의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낸다.대신 그는 사람,사물에 대한 독단적인 견해보다는 건전한 비판을 내세우게 된다.에쎄는 그가 고뇌하고 갈등했던 다양한 체험 결과를 자신의 거울에 비춰 쓴 성찰력의 소산으로 보여진다.
몽테뉴보다 반세기 가량 늦게 태어난 데카르트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크게 대조가 되는데,데카르트가 열정과 배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금욕주의자처럼 지냈던 반면,몽테뉴는 신구교의 내전을 목도하면서 당시 프랑스의 사회 분열상을 치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으며,협상가로 활동하기도 했다.<방법서설>을 집필한 데카르트가 관념적인 소유자라면 몽테뉴는 현장 및 유람을 통해 보고 듣고 체득한 결과물이기에 시대 상황 및 몽테뉴 개인의 생각과 감정 등이 근접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즉 그는 인간의 보편적인 유형으로 들어 가기 위해 힘을 쓰고 사회 전체로 연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가 개인과 사회를 통해 밝히고 있는 대목은 절친인 보에시와의 깊은 우정을 비롯하여 죽음,회의,동물,전쟁,여행,고통,섹스,관계,취향,유년,자아(Egoism)으로 되어 있다.몽테뉴 부인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던 보에시의 임종까지도 지켜 보았던 몽테뉴는 죽어서도 우정은 살아 있다고 회상한다.뒤를 잇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도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라고 할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여인에게서 난 몸,수명은 짧고 혼란만 가득하다.꽃처럼 솟아났다가 시들고,그림자처럼 사라져 오래가지 못한다." - 욥기 14장 1~2절 -
낙마(落馬)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며 혼미한 상태에서 몽테뉴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회의주의적인 시각을 나타낸다.당시 스토아 학파를 비롯하여 신구교의 교의가 획일적이고 꽉 막힌 절제주의는 숨이 막힐 정도였을 것이다.그는 신장결석을 치료차 독일,이탈리아 등을 유람을 한다.여행을 통해 친척과 친구를 해후할 수 있는 즐거움과 그 지역의 인종학적 관심,각종 의식과 습관,동태,몸짓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여행에 대한 흥미로운 교훈이 아닐 수가 없다.
인간은 동물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는 몽테뉴는 일이 어그러졌을 때 돼지,소,닭에 빗대어 욕을 퍼붓기도 한다.이것은 한국에서도 자주 쓰이고 통용되는 말이며,몽테뉴는 농사와 사냥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수탉이 언제 우는지를 관찰하고 영주 신분으로서 승마를 좋아하고 말을 분신으로 생각했을 정도이다.당시 교통수단이 말이었던 만큼 말과 관련한 단어가 많다는 점도 이색적으로 다가온다.전쟁에 관련해서는 고대 전략과 전술,화승총,창,장군들에 관한 이야기에 치중하고 있다.
신장결석을 치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몽테뉴는 온천에서 자기 몸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멜론을 먹다가 그 고통에 시달리는 악몽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신장결석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감각기능이 발달하고,신장결석의 돌이 빠져나올 때의 느낌은 탄생할 때의 느낌,그리고 성행위가 최고 절절에 달했을 때의 오르가즘에 비유하고 있다.이를 섹스 문제로 연결하면 상대방에게 정신적 매력을 느끼지 못해도 성행위는 가능하지만 육체적 매력을 못 느끼면 할 수가 없다라고 하며,성행위 중에 사정을 참는 방법도 설명하고 있다."바로 그 순간에 다른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다".라는 등의 대범하고도 경험적인 체험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몽테뉴는 법관,보르도 시장 등의 공직 생활에서 물러난 뒤에도 외교계에서 계속 활동을 했다.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에 몰두 하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고 관계라고 확신하고 있다.아울러 관계에서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차이를 인식하고,연인과 가족을 위해서는 사적인 공간을 마련하여 타인의 침범을 경계했으며,관계는 심리적인 관계 못지 않게 육체 간의 물리적 결합이 인간 본능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일본의 와쓰지데쓰로는 관계를 사이(間柄: 아이다가라)로 보면서 아이를 잃은 엄마가 본능적으로 자석과 같이 아이의 뒤를 뒤쫓아 가는 자석과 같은 힘이라고 한다.
"사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몽테뉴는 말한다.몽테뉴는 개인주의 문학 형식의 창시자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신의 내면 세계에 침잠을 하고,행복의 근원은 우리의 부모,우리의 자녀,그리고 우리의 친구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라고 했다.결국 자신의 가까운 혈족부터 친우(親友)까지를 영혼의 동반자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정신적으로 인본주의(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던 몽테뉴는 인간의 언어 능력을 인간다움의 본질로 생각하고 이는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삼았다.또한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사색하고 관념적인 언어로 자신을 성찰한 것이 아닌 직접 오감으로 느끼고 체득한 것을 고뇌의 산물로 표출된 것이 그의 에쎄(수상록)에 여과없이 선연하게 드러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몽테뉴라는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 프랑스의 사회제도,종교간 갈등과 내전 등의 역사적 사실까지도 간파할 수가 있어서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