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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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1928년에 때어나 1967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죽은 체 게바라는 살아 있을 때도 쿠바와 남미에서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살아 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즉 1968년 프랑스 '5월 운동' 당시 영웅으로 추대 받았고,4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체 게바라는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간 그의 삶의 궤적은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 볼리비아 반군에 의한 참혹한 죽음은 그를 '전사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다.그는 자본주의를 가장 경계했으며,그의 이념과 국가를 떠나 전설의 혁명가로 살아 남아 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친구와 남미를 여행하던 중 남미의 민중들이 심한 탄압과 굶주림을 목격하면서 착취계급,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와 피착취자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정의를 불사르게 된다.특히 1950년대 남미 민중의 삶이 매우 열악하고,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 자본가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종속되어 하층민들의 삶이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그는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진보 정권이 비교적 자유로운 과테말라로 갔는데,그 곳에서 여성 혁명가인 첫 번째 부인 일다 가데아를 만나고,과테말라의 아루벤스 정권이 아르마스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자는 것을 목격하면서 남미 민중을 위한 진정한 혁명은 무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아르마스 독재 정권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된 체 게바라는 멕시코로 망명을 하고 아내의 소개로 쿠바의 망명 정치가인 피델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그는 피델 카스크로를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 강인하면서도 온화한 새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그러면서 쿠바 해방 운동에 동참을 한다.본격적인 쿠바 민중 해방을 위한 게릴라 투쟁이 시작되고 활동거점은 주로 산악에서 펼치고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미니카로 망명하면서 반군들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다.그 공로로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 정부의 각료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알레이다 마치와 재혼을 한다.1959년부터 1965년까지 체 게바라는 쿠바의 요직을 두루 거친다(요새 사령관,국립은행 총재,산업부 장관).그런데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의 보장된 미래와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자신이 믿는 혁명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쿠바를 떠나는데,카스트로에게 '쿠바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는 편지를 남긴다.그것은 쿠바가 미.소로부터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원했지만 카스트로는 의견이 달랐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1965년 11월 볼리비아로 혁명을 불길을 지피는데 볼리비아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볼리비아 민중은 본국 혁명 대장을 원했고 외국인인 체 게바라를 경원시했던 것으로 보여지며,혁명군 내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강하게 작용했다.결국 1967년 10월 볼리비아 하사관에 의해 사살되는데,하사관 역시 투신자살하면서 체 게바라의 사상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혁명가이다.그러나 그가 믿는 신념,민중을 해방시켜 미.소국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려는 혁명가적인 실천력은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고도 남는다.이념적으로 냉혹하고 거친 시대에 혁명가로 일생을 마친 체 게바라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유머가 넘치는 세상을 꿈꾼 순정한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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